60년간 두집 살림에 가부장적 멸시 시달려

팔순의 할머니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남편의 두 집 살림과 가족들에 대한 가부장적 멸시를 견디다 못해 60년동안의 결혼생활을 끝냈다.

올해 팔순을 맞은 최모(28년생)씨는 1948년 11월 21살의 어린 나이에 한 살 아래 남편 김모씨와 결혼했지만 신혼의 단꿈도 없이 험난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남편이 1950년을 전후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뛰어들어 가정을 돌보지 않는 바람에 3남4녀의 자식들을 홀로 키우다시피 했고, 정부기관으로부터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갖은 고초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최씨는 묵묵히 가정을 지켜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고생도 모르는 듯 남편 김씨는 "무식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고 가족들에게 자신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게만 강요했다.

남편은 1964년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부터 몰래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그냥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간혹 남편에게 따질때면 폭행만 되돌아왔다.

남편은 이후 사업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명예도 얻고 큰 돈도 벌었지만 아내 최씨는 매월 생활비를 타 써야 할 정도로 늘 가난했다.

남편은 동거했던 여자에게 3층 건물을 지어주고 매월 50만원을 주면서도 정작 대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아내에게는 30만~40만원밖에 주지 않았다.

70세가 된 이후에도 또 다른 여자와 가깝게 지내더니 2004년 5월 생활비가 적다고 따지는 최씨에게 폭언을 하고는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이제는 쥐꼬리만한 생활비도 끊겼다.

최씨는 고령의 나이로 몸이 허약해져 병원을 다녀야 했지만 치료비마저 받지 못하게 되자 '남은 생이라도 더 이상 무시를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끝내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명예가 실추된다는 이유로 이혼에 반대했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자식들도 모친의 이혼 결심을 말리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는 최씨가 남편 김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등 청구 소송에서 "1억원의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8억원을 지급하라"며 최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고 25일 밝혔다.

김씨가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하면서 부정행위를 하고 생활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며 아내를 무시하고 폭언과 폭행까지 함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줘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