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감시직 계약해지 잇따라

경제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안들이 오히려 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모순된 모습이 곳곳에서 빚어지며 정부 비정규직 대책의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감시.단속근로자 최저임금제와 7월 시행을 앞둔 비정규직 법안에 부담을 느낀 사용자들이 정작 법의 보호 대상인 비정규직의 자리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경남 창원시의 한 학교에서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며 혼자 힘으로 아들을 키워온 김모(50.여)씨는 아들의 대학 입학을 앞둔 올해 눈앞이 깜깜하다.

학교측에서 급식 조리원으로 일할 수 있는 한창 나이인 김씨에게 "조리원으로 일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지난 12일 갑작스레 재계약 해지 통보를 해 온 것.
8년 동안 이 학교에서 조리원으로 일해 왔으나 올해 그만둬야 할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던 김씨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고 걱정과 함께 서러운 2월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남지역에는 조리원, 영양사, 교무행정 등을 담당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6천600여명에 이르지만,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언제 그만두거나 업무량을 늘려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올해 7월 비정규직 법안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법안의 보호 대상이 됨에 따라 부담을 느낀 공공부문 사용자들 사이에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부가 지난해 8월 정부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하면서 오는 5월께 기관별로 비정규직 중 정규직 전환자를 선정키로 한 것도 이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서명순 전국여성노조 경남지부장은 "올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재계약 해지 사례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배 가량 늘었다"며 "학교들이 앞으로 이들을 함부로 해고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정리할 수 있을때 미리 정리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을 고용한 학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리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학교비정규직의 인력 관리를 개별 학교에 맡기다 보니 전체적인 비정규직 고용 안정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감시.단속근로자 최저임금제' 역시 비정규직의 목을 조르기는 마찬가지다.

경남지역 아파트 단지의 33%에 해당하는 296개 단지는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뒤 경비직의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인원을 감축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올해 최저임금 적용으로 시간급 2천436원(일반 근로자 최저임금 시간급 3천480원의 70%)을 보장받고 있으며, 경남의 경우 평균 임금이 70만원선에서 90만원선으로 인상된 것으로 추계됐다.

감시.단속근로자 최저임금제의 도입에 따른 사용자들의 부담이 그대로 인원 감축으로 나타난 것이다.

창원대학교는 오는 28일로 계약이 만료되는 학교 건물 경비원 86명 가운데 14명에 대해 재계약 포기 방침을 전달하고, 대신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운영키로 결정했다.

학교측에서는 이들이 나이가 많아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고, 이들의 빈 자리를 카메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제 도입으로 인해 부담을 느낀 학교가 일자리를 줄였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나는 비정규직의 일자리 감소 문제는 비정규직 법안이 본격 시행될 경우 이 같은 현상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조태일 교육선전국장은 "비정규직 대책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를 손대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역작용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라며 "정부는 현실을 빨리 깨닫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원대학교 노동대학원 심상완 교수는 "정부에서 비정규직 대책을 마련하면서 이 같은 부작용까지 감안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용자 측에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넓은 관점의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진규수 기자 nicemasar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