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25일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21세기 동북아 중심국가'를 큰 그림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한 경제정책으로 "각 분야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시장과 제도를 투명하게 개혁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참여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어떨까.


◆경제지표들은 괜찮지만…

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연설에서 "참여정부 4년의 경제 성적은 상위권"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4년 평균 경제성장률 4.2%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7위에 해당하며,특히 2006년 성장률 5%는 OECD 국가 최상위권이라고 근거를 제시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형으로 드러나는 각종 경제지표들만 보면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주가와 원화가치다.

코스피지수는 임기 초 600대에서 지금은 1400을 넘어 130% 이상 뛰어올랐다.

원·달러 환율도 1200원 언저리에서 930원대까지 하락해 원화가치가 20% 이상 높아졌다.

1인당 국민소득(GNI 기준)은 1만1500달러에서 1만8300달러 수준으로 올랐고 물가와 실업률은 각각 2%대와 3%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장의 속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 4년 평균 성장률 4.2%는 외환위기 후유증이 극심했던 국민의 정부 4.39%보다도 낮은 수치다.

참여정부 집권기간 중 중국과 인도가 각각 10.3%와 8.4%,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6.5%와 6.4%의 고도성장을 일궈냈다는 점을 참고하면 한국의 성장률 둔화는 '지나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수출 호황 등을 감안하면 미진하다"고 진단했다.


◆성장엔진에 문제 없나

'잘 나가던' 한국 경제가 참여정부가 집권한 뒤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예전과 같은 고속성장을 이뤄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과 가계 정부 등 3대 부문의 성장엔진이 식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정부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는 몸집이 비대해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4년간 공무원 수는 88만5000여명에서 93만3000여명으로 4만8000명이나 늘었다.

노태우 정부 이후 가장 많이 증가했다.

복지예산 등 재정 지출이 증가하면서 참여정부 출범 이전 10%대에 머물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지난해 33.4%까지 급격하게 높아졌다.

최근 들어서는 각종 공기업과 금융회사에 낙하산 인사가 만연하면서 혁신이란 말 자체가 무색해졌다.

가계는 집값 폭등에다 세금 및 준조세 부담 증가로 인해 소비 여력이 줄고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서민들마저 부동산 재테크에 나서는 등 근로 의욕이 눈에 띄게 감퇴했다.

가계대출은 2002년 말 391조원에서 지난해 3분기 말 529조원으로 138조원이나 늘었다.

은행 빚을 얻어 주택을 장만한 서민들은 대출금리가 2004년 4%대 중반에서 최근 7%대까지 치솟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금 납부액은 매년 늘어나고 소득 증가에 따른 누진세로 인해 정작 쓸 돈은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실업률은 3%대 중반이지만 청년 실업률이 8%대에 육박하는 등 통계와 체감은 괴리가 크다.

정부와 가계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 곳은 기업 부문이다.

미래 성장잠재력의 핵심인 기업 투자가 참여정부 들어 사실상 중단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1.2%에 불과하다.

1990년대 초반 5년과 후반 5년의 11.9%와 5.5%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치다.

'자본의 파업'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다.

일본과 싱가포르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때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8.8%와 10.8%에 달했다.

이들 나라가 2만달러로 도약하는 데 걸린 기간은 각각 6년과 5년에 불과하다.

한국이 11년이 지나도록 2만달러에 오르지 못한 중요한 이유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