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금액이지만 학생들에게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고교생들에게 한경ㆍ인송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 양귀애 인송문화재단 이사장(60ㆍ대한전선 고문)은 19일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생들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회가 돼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양 이사장은 "어떤 꿈을 갖느냐에 따라 삶 전체가 확 바뀌는 법"이라면서 "희망을 접지 않고 펴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기업인의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 이사장이 장학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한전선 고문을 맡으면서부터다. 2004년 3월 남편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이 갑자기 타계한 후 대한전선 고문과 인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사재 130억원을 추가 출연해 150억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또 설 회장의 뜻을 기려 설원량 문화재단을 별도로 설립했다.

"남편이 떠나간 후 한동안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의 뜻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재단 기금도 늘리고 회사를 위해 정성을 다하게 됐지요." 양 이사장이 기억하는 설 회장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바른 길을 결코 비켜가는 법이 없고 검소하고 솔선수범하는 경영인이었다. 양 이사장은 그런 남편이 같이 있을 때는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양 이사장은 '그룹' 회장과 한평생 살면서도 오히려 평범한 가정주부에 더 가까웠다. 항상 회사일이 먼저였던 남편이 가끔 남산길을 걸으며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으나 그것으로 그룹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을 느꼈다. 양 이사장은 취임 후 낮에는 회사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3년째 경영 교육을 받고 있다. 세계경영원 등에서 지금까지 거쳐온 교육 과정만 대략 10개나 된다. "일주일에 평균 이틀 꼴로 나간 셈입니다. 항상 맨 앞에 앉아요. 가끔 '이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도 받기 때문에 집중해서 들어야 하거든요.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리를 통해 재계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양 이사장은 회사 일과가 끝난 후 계열사 임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거나 남산길을 함께 오르며 산책 회의도 한다. 6km를 걸으며 계열사 임원들끼리 화합을 다지는 남산길 산책회의는 사내에 데이트 경영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은 남산에 오를 수가 없었어요. 길가 나무 하나 하나에 남아 있는 남편의 잔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이제는 가끔씩 회사 사람들과 그 길을 걸으며 회사일이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지요. 책상에서 못하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고요."

차이나칼라에 7부 정도의 짧은 진홍색 재킷을 입고 나온 양 이사장은 환갑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활기차 보였다. 그러나 설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 나는지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울적할 때는 쇼팽의 왈츠 등을 연주하며 마음을 추스른다는 양 이사장은 회사 직원들에게 스스로 일을 찾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 이사장은 아들 둘을 두고 있다. 큰 아들 윤석씨는 회사 경영전략팀 과장으로,작은 아들 윤성씨는 미국 와튼스쿨에 재학 중이다. 양 이사장은 이들의 경영 교육에 대해 "스스로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고난과 성취의 과정을 겪어 보고 굳건히 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박주병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사진=김정욱 기자 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