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혜자인 무연고동포 9월 한국어시험
연고자는 내달 4일부터 혜택, 차별논란

다음달 4일부터 시행키로 한 방문취업제의 핵심인 무연고동포자에 대한 국내 취업이 당국의 준비소홀 등으로 사실상 9월로 연기돼 혼란이 예상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14일 "국내에 친척이 있는 연고 동포는 3월4일부터 한국어시험을 보지 않고 누구든 '방문취업'(H-2) 사증을 발급 받아 입국해 취업할 수 있지만 무연고 동포는 오는 9월 처음 실시하는 한국어시험을 본 후 입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방문취업제와 관련한 이같은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최근 법제처에 넘겼고, 이 개정안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이달 말 쯤 확정될 예정이다.

이로써 이 제도의 핵심적인 내용인 무동포 연고자의 국내 취업이 6개월 이상 늦어지게 돼 동포들의 반발과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노영돈 인천대 법대학장은 이와 관련, "방문취업제 시행의 근본 취지는 경제 사정이 열악한 무연고 동포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 취업의 기회를 줘 귀국 후 안정적 정착을 꾀한다는 데 있다"며 "실제 수혜 대상인 중국 및 구소련 동포들이 빨라야 10월에나 입국할 수 있다는 것은 내용 면에서 8개월 정도 연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도 시행과 함께 시험을 치르고 곧바로 입국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무연고 동포들의 원성이 높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며 현지 동포사회는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정부의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방문취업제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 1월3일 공포했고,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3월4일부터 방문취업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방문취업제도에 대한 논의는 이미 1년 전부터 시작됐고, 이 정보를 입수한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한국어시험과 관련한 각종 사기사건이 횡행해 외교부와 중국 지린(吉林)성 공안, 옌볜(延邊)자치주 정부가 '사기 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신상문 동북아평화연대 실장은 "동북3성 지역의 브로커들은 특정 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받으면 H-2비자를 받는 것이 문제 없다고 허위선전하면서 과다한 수업료를 받아 중간에 가로채는가 하면 H-2 비자를 대행해 준다는 여행사라며 사기를 치고, 한국어 시험기관과 연계돼 있다는 감언이설로 고액의 학원비를 뜯기도 하는 등 조선족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포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무연고 동포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규제하면서 당사국과 외교적 마찰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동포사회는 멍들어갔다"며 "제도 시행에 따른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10월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법무부가 중국의 경우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평가원과 중국 교육부 산하 '고시중심'이 한국어 시험을 공동 관리하도록 하고 9월에 9-10개 지역에서 시험을 치르기로 한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우즈벡 등 독립국가연합(CIS)지역에 대한 계획은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는 점도 준비 미흡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는 지적이다.

노 학장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늦어도 4월에는 한국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며 "정부는 시기를 미루지 말고 준비를 철저히 해 달라"고 주문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동포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방문취업제와 관련 현지 조사와 공청회, 전문가들의 견해 등을 통해 충분히 의사를 수렴해 최대한 신속하게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현지 동포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이번 주 외교 공관에 방문취업제 시행에 안내 자료를 보내 홍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마련한 시행령 규칙에 따르면 한국어 시험은 말하기, 읽기, 쓰기 등 한국 생활과 취업 전선에서 필요로 하는 기초 한국어를 평가하되 최소 점수(50점 정도)를 얻은 무연고 동포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H-2비자를 발급한다.

시험 성적은 5년 간 유효하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ghw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