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를 뒤집으면서까지 과로와 간질환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입니다."

최근 과로로 간질환이 악화해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태평양의 유철형 변호사(사시 33회)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됐던 대한간학회 보고서의 오류를 집중적으로 지적한 게 주효했던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원고측을 감안해 이 사건을 무료로 변론했다.

대법원은 2002년 이후 대한간학회의 '간질환 관련 업무상 질병인정 기준 보고서'를 근거로 과로 및 스트레스가 간질환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해 왔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이 보고서가 과로와 간질환의 인과관계를 부정해온 근로복지공단의 의뢰로 제작됐다며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하급심 판결을 이끌어냈다.

유 변호사는 "과로 때문에 간질환이 악화한다는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원고가 간암 발병 전 2~3년간 과도한 업무를 집중적으로 수행했고 그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졌다면 이것도 일종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유 변호사는 대한간학회 보고서를 작성한 의사를 증인으로 세워 과로와 간질환 악화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학회가 문제 의식을 갖고 독자적으로 수행한 연구가 아니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세법을 전공한 유 변호사는 조세 관련 소송을 주업무로 하고 있지만 의료 소송에도 관심이 많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의료와 법' 고위과정을 거치기도 한 그는 "수임 사건 중에 조세 관련 소송 다음으로 의료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

무료 변론을 해 준 것에 대해 유 변호사는 "로펌 내에 있는 공익활동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이번 사건을 맡게 됐다"면서 "결과가 좋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