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永洙 < 고려대 교수·헌법학 >

재물과 행운을 불러온다는 '황금돼지해',정해년이 밝아 온 지도 어느새 20여일이 흘렀다. 언제나 새해가 시작되면 서로 복을 빌어주면서 만복(萬福)이 가득하길 기원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황금돼지해라는 말이 더욱 솔깃하게 들리고 요즈음처럼 돼지가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올해만큼은 나라나 가정의 경제 살림도 나아지고 국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바라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하늘이 내려주신 수명인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사는 것이다. 인간이 일생동안 누리는 다섯 가지 큰 복,즉 오복(五福)에 대한 옛이야기에서도 그 첫째로 치는 것이 바로 천수다. 그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2005~2010년의 평균수명이 78.2세에 달해 일본의 82.8세에 비해 낮긴 하지만 이 정도로 높아진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소식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은 나라 전체로서는 산업생산을 담당해야 할 핵심 인력의 고령화(高齡化) 문제가 걱정되고,개인적으로는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유행어 속에 길어진 퇴직 이후의 노후대책 문제가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 벽두부터 들려온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높은 이웃나라 일본이 정년을 70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남다른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2차 대전 직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團塊)세대가 65세가 되는 2012년에 대비하기 위해 벌써부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본은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정년연장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각 기업의 상황에 적합한 제도를 찾아주는 '70세 고용지원 상담사'를 육성하는 등 다양한 지원방안도 마련해 산업생산과 노후대책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8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aged society)에 들어서고,2026년이면 그 비중이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ultra-aged society)에 진입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의 발빠른 대응 자세는 서둘러 배워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는 기업으로 하여금 고령인력의 활용을 장려하고 그 생산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개인의 노후복지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도록 '일하는 복지(福祉)' 개념의 제도들을 적극 도입하고 장려해야 할 것이다.

즉,단시간 근로나 파견근로 등 다양한 고용형태를 기업이나 근로자 모두 자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적 퇴직 제도나 퇴직 후 재고용 제도 등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산업생산과 경제의 핵심주체인 기업의 대응자세일 것이다.

지난해 여름 산업자원부와 산업기술재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근로자의 73.1%는 퇴직준비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기업체의 91.1%는 근로자 고령화에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대비책을 마련하겠다는 기업조차도 16.5%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적자원(人的資源)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지식경제시대에 근로자들의 의식 및 상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기업들의 고령화 대응 노력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새해이다.

기업들이 천수를 누리며 발전할 수 있도록 고령화에 대비한 근로자 활용 방안을 정부와 산업계에서 공동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