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상처만 남긴 '승자 없는 게임'
'성과금 관례' 못 깼으나 '생산손실 만회' 성과


"노사 모두 승자 없이 패한 게임이었다."

현대자동차의 성과금 차등지급 사태가 21일 만에 마무리 됐으나 성과금 지급에 대한 원칙을 올바르게 세우지 못했다는 비난과 함께 노사 모두 큰 상처만 남기고 봉합됐다.

성과금 '조건부 지급'에 합의함으로써 성과금 지급 관례를 완전히 깨트리지는 못한 채 이헌구 전 위원장 구속영장(배임수재) 청구사건이 불거지면서 회사와 노조가 모두 '뒷거래'를 했다는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됐고 회사는 생산피해, 노조는 민형사상의 책임과 임금손실 등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 회사 노사는 17일 지난 해 생산손실분(2만8천700여대)과 성과금 사태로 인한 손실분(2만1천682대)등 5만여대를 2월 말까지 만회하기로 하고 만회 시점에 미지급 성과금 50%를 격려금으로 지급한다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에 대해 그동안 노조의 불법파업에 분노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회사에 대해서는 "원칙을 지켜라"고 강력히 요구해 왔던 협력업체와 전국의 경제.시민.사회단체는 "결국 원칙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성과금 지급 관행이 되풀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가 지난해 연말 성과금을 100%만 지급한 것은 임금협상 때 "연말 생산목표 100% 초과 달성시 150%, 95% 이상 달성시 100%의 성과금을 지급한다"는 합의서에 따른 것이었다.

노조의 잦은 정치파업으로 연말 생산실적이 목표 164만7천대에 2만8천732대가 모자라는 98.25% 달성에 그치자 합의대로 100%만 지급한 것이며, 노조는 "성과금 지급은 생산목표 달성과 관계 없는 관례"라는 이유로 반발해 잔업.특근 거부와 파업 사태까지 초래했다.

회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원칙을 지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협력업체 등 각계에서 공감의 지지를 보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조건부이긴 하지만 성과금 50%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매듭이 나자 일부에서 "이렇게 할 바에야 뭐하러 여기까지 끌고 왔느나"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해 달성하지 못한 생산차질 부문과 이번 사태로 인한 생산차질을 노조가 만회한다는 조건으로 회사가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회사는 최근 수 년째 연초에 수립한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임단협 때 마다 300% 안팎의 성과금을 조건 없이 지급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이 노조의 정치파업 등에 있다고 보고 특근 등을 통해 그만큼 차질을 보충하도록 한 것이어서 그동안 노조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협상관행이 다소 진전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회사가 당초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강경 자세에서 한 발 물러나 이처럼 명분을 얻는 선에서 양보한 것은 이번 사태로 생산피해가 커지고 있는데다 이헌구 전 노조위원장 구속(배임수재) 사태로 '회사가 노조와 검은 뒷거래를 해왔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회사로서는 지난 16일 이 전 위원장의 금품수수 혐의가 불거지면서 지금까지 노조에만 일방적으로 쏟아지던 전국민적 비난 여론이 '노무관리'를 명목으로 노조위원장에게 거액을 제공하는 등 뒷거래로 노조를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느냐는 비판으로 기우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는 또 파업에 따른 대내외적인 이미지가 계속 실추되면서 생산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하루라도 빨리 파업을 중단시켜야 하는 마당에 노조가 생산손실을 만회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최소한 '성과에 따라 성과금을 준다'는 원칙을 세우는 계기는 마련됐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노조 역시 생산 만회 약속도 하지 않고 무조건 성과금을 내놔라 하던 당초의 자세를 마냥 되풀이할 수 만은 없는 입장이었다.

10대 집행부 이헌구 위원장 구속영장 청구 사건으로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조위원장이 그것도 임금협상 도중에 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면서 노동조합 존립의 근본이 흔들리고 도덕성에 결정타를 입게 되자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박유기 현 노조위원장이 10대 집행부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핵심 간부였기 때문에 도덕성을 강조하는 노동조직의 특성상 결코 이씨의 금품수수 혐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만은 없게 되자 더 이상의 비난여론을 감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성과를 내지도 않고 성과금을 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거나 "불법파업을 일삼는다"는 국민적 질책과 임박해진 노조간부 사법처리, 정부의 공권력 투입 검토 등의 전방위 압박 또한 노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회사의 성과금 차등지급과 노조의 불법 잔업거부 시작으로 야기된 이번 사태는 노사 모두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치부만 드러낸 가운데 성과 없이 성과금을 지급하던 관례의 악순환마저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채 마무리 됐다는 지적이다.

(울산연합뉴스) 서진발 기자 sj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