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회장 기소여부 늦춰져…故박재중 전무 관여 드러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이 16일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으로 3월로 연기됨에 따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소 여부 결정도 늦춰지게 됐다.

검찰은 18일로 예정됐던 선고 공판에서 박노빈ㆍ허태학 전·현직 사장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이 회장을 소환조사한 뒤 기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왔으나 선고가 미뤄짐에 따라 이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검사는 이날 법원의 변론 재개 결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회장 소환여부는) 판결 결과를 보고 처리하자는 검찰의 입장에 바뀐 것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에버랜드가 저가에 CB를 발행해 이재용씨 등 이 회장 자녀들에게 넘기는 데 이 회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밝히기 위한 검찰 수사는 적어도 3월 이후까지 늦춰지게됐다.

최대 관심사인 이 회장 소환 문제와 별도로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의 항소심 공판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전환사채 인수 과정에 그룹 비서실 재무팀에 근무하던 고 박재중 전무가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이 부분이 향후 재개될 변론 과정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앞으로 변론 과정에서는 박 전무의 역할과 삼성 총수 일가의 인지ㆍ지시 여부, 그룹 비서실의 개입 정도를 놓고 막판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측 변호인단도 박 전무의 관여 사실을 공소 사실로 추가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고 말해 박 전무의 관여에 대해선 삼성측도 인정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검찰은 재판부가 선고 공판을 이틀 앞두고 변론을 재개한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재판부 결정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검찰 관계자는 "선고를 앞두고 변론이 재개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선고를 빨리 해줬으면 하는 게 검찰 입장이었다.

우리는 법원에서 할 말은 다 했고 선고 결과만을 기다려왔다"며 선고 연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재작년 12월 첫 공판이 열린 이 사건 항소심 공판은 작년 1월 재판장이 사직하고, 같은 해 8월 후임 재판장도 인사 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디게 진행돼 왔고 이 때문에 법원이 공판 진행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다음달로 예정된 법원 인사에서 주심을 맡았던 판사가 전보돼 재판이 또 연기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으나 재판장이 사건을 꼼꼼히 챙기며 심리를 주도해온 만큼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