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아파트의 택지비를 감정가뿐만 아니라 매입가격도 인정하기로 한 것은 집 한 채라도 더 공급을 늘려보려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건설업체나 부동산개발업체(시행사)가 아파트 분양가를 산정할 때 택지 감정가가 실제 매입금액보다 낮게 나올 경우 사업을 아예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주택 공급이 크게 위축되고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1·11 대책' 발표 이전에 매입한 땅에 대해서는 감정가 대신 매입가를 택지비로 산정해 분양할 수 있도록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러나 정부가 분양원가의 큰 틀을 차지하는 택지비 산정 기준을 며칠 만에 번복함으로써 스스로 정책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매입가를 택지비로 분양가에 반영

정부는 '1·11 대책'에서 오는 9월부터 민간아파트 분양가를 산정할 때 택지비는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이 산정한 감정평가 금액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건설사나 시행사가 관행적으로 택지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분양가를 높여 과도하게 이익을 챙겨온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땅값을 감정가만 인정할 경우 아파트 건설 사업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시행사나 건설업체들이 택지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져 주택공급이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뚝섬 상업용지의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이 불투명해져 해당 업체에 비상이 걸렸었다.

서울시가 2005년 6월 뚝섬 상업용지 1·3·4구역을 공개경쟁 입찰로 매각할 당시 감정가는 5270억원이었으나 2.1배가 넘는 1조1262억원에 낙찰됐다.

지금 다시 감정을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매입금액을 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9월 이후로 분양 일정을 잡은 뚝섬 상업용지를 매입한 업체들은 아예 분양을 포기하거나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고 분양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정부가 매입가격을 택지비로도 인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양가 인하보다 공급 우선 고려

정부가 분양원가인 택지비의 산정 방법을 유연하게 대처하기로 한 것은 차질없는 주택 공급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는 당초 '1·11 대책'으로 민간택지 아파트의 분양가가 20% 정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택지비를 감정가로 할 경우 분양가 인하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택지비 산정방식이 주택공급 시스템에 혼선을 일으켜 공급의 발목을 잡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1·11 대책' 발표일인 지난 11일 이전에 매입한 땅은 업체가 증빙서류를 입증할 경우 매입원가를 택지비로 인정해 주는 쪽으로 다시 가닥을 잡았다.

분양가 인하가 목적인 분양가 상한제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면서 절충점을 모색한 것이다.

정부는 현재 감정가와 장부가,실매입가 가운데 업체가 신청하는 것을 분양가에 포함시켜 택지비로 인정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A건설사 상무는 "분양원가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땅값을 매입한 가격대로 분양가에 반영하지 못할 경우 분양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정부가 뒤늦게나마 매입가격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택지비 산정 기준 변경으로 분양가 인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여 향후 시행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금이 간 정책 신뢰

권오규 경제부총리,이용섭 건교부 장관 등 정부 당국자들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국민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해 왔다.

'1·11 대책' 때도 "정부는 시장의 신뢰가 제고되고 시장 안정세가 뚜렷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택지비의 매입가 인정'으로 정부의 정책 신뢰성은 다시 한번 금이 가게 생겼다.

'1·11 대책'이 나온 지 사흘도 안돼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의 중요한 부분인 택지비 산정방식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동산 대책반의 핵심 부서인 재정경제부와 건교부 간에 사전 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건교부 고위관계자는 "업계의 어려운 점을 알지만 현 단계에선 택지비 산정방식에 예외조항은 없다"고 강조했다.

재경부가 택지비 산정 방식을 수정하겠다는 방안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