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동굴 모양의 황금홀.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포함한 각료급 대표 13명과 그들을 수행한 48명의 보좌진이 자리에 앉았다. 그들과 맞선 중국팀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우이 부총리를 포함한 각료급 14명과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72명의 전사들.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긴장감을 높여줬다."

지난 14~1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던 '제1차 미·중전략경제대화' 장면을 외신들은 이렇게 전했다.

미국은 절박했다. 올해 2400억달러로 늘어날 대중 무역적자가 경제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 미국은 그 원인이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싸구려 수출을 가능케 한 중국의 환율제도에 있다고 판단, 공세를 폈다. 폴슨 재무장관은 정부와 독립적인 벤 버냉키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버냉키 의장은 독립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정부 대표단이 준비한 전세기를 이용하지 않고 유나이티드 항공을 타고 혼자 날아갔지만 협상팀에 합류해선 염치불구하고 폴슨을 거들었다.

폴슨을 맞은 우이 부총리는 녹록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미국 대표팀 지칭)은 중국을 잘 모른다. 중국의 발전은 세계 경제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지금도 인구의 10%가 넘는 1억5000만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앞으로 20년간 3억명이 생계를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할 것이다. 우리는 조화로운 성장이 필요하다." 가난한 대중의 먹거리를 찾아주기 위해 조화로운 발전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를 갑작스럽게 올리거나 완전히 시장에 맡겨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공동기자회견장에서 폴슨 재무장관이 위안화 변동성을 높이기로 양국이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우이 부총리는 그 문제에 함구했다.

G2(세계경제의 두 축을 이루는 미국과 중국을 지칭)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계기가 된 이번 대화에 미국이 절박하게 나온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 관료들을 베이징으로 몰아넣은 힘은 다름아닌 의회와 재계의 협박과 요구였다. 찰스 슈머 의원(뉴욕주)을 축으로 한 민주당 의원들은 미국 경제불안의 원인인 위안화 약세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중국에 보복조치를 취할테니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행정부가 빨리 나가서 싸우라고 촉구했다. 의원들의 공세 논리는 재계가 댔다. 재계는 위안화가 중국의 경제현실 대비 40%나 싸 공정한 무역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의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국익과 기업의 이익을 위한 의회와 재계의 요구가 FRB까지 동원한 베이징 담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경제의 앞날이 걸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삐걱거리고 있다. 반덤핑 같은 무역구제(救濟)부문의 입장 차이야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지만 반대세력의 과격한 시위와 그로인해 국민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지는 FTA 비관론은 심각한 상황이다. FTA 이슈를 야심차게 꺼낸 노무현 대통령도 성공하면 업적이요,안되면 내년 대선에 이용할 수 있는 '꽃놀이패' 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많다.

해를 넘기면 대선으로 치닫는 어수선한 정국을 맞는다. 국익이 걸린 한·미 FTA에 국익을 생각하는 세력들이 G2의 빅매치에 임한 미국처럼 절박하게 나설 때다.

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