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취업비리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던 현대자동차 노조가 올해 또다시 노조창립일 기념품 납품비리로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조기선거를 결정하면서 집행부가 중도 사퇴하게 되는 불명예를 맞게 됐다.

현대차 노조 집행부가 비리로 인해 임기 중 하차하는 것은 2000년 8대 집행부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8대 집행부는 2000년 당시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광고를 중앙일간지에 실은 뒤 광고비를 직접 지급하지 않고 회사 돈으로 대납했다가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임기 10여개월을 남긴 채 사퇴했다.

이번 집행부의 중도사퇴는 지난 7월25일 노조 창립일을 맞아 기념품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의혹이 제기되고 도덕성 시비가 붙으면서 예고됐다.

노조는 기념품 선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도 꾸리고 경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그러나 수사에 나선 울산 동부경찰서가 2개월여만인 지난 11일 노조 창립일 기념품 납품계약 과정에서 자격이 없는 업체와 계약한 혐의(업무상 배임 등)로 현대차 노조집행부 현직간부 이모(44)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피의자가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됐다.

현대차 노조집행부 현직간부가 비리 관련 혐의로 구속되기는 유례없는 일이었고 지난해 취업비리 이후 각종 비리 등을 막기 위해 노조간부 윤리강령까지 제정했던 집행부이기에 충격은 적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숨죽이며 수사과정을 지켜봐 왔던 노조내 일부 현장노동조직과 조합원들이 현대차 노조의 도덕성 타격을 입힌 현 집행부에 대한 사퇴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현장 노동조직인 전민투와 실노회, 현대차 신노동연합 등은 잇따라 대자보와 유인물을 내고 집행부는 사퇴하는 등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노조는 이 같은 내홍 속에서 거취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집행부는 중앙 투쟁과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전환 일정 등을 감안해 당장 사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때문에 노조집행부와 현장노동조직 등은 12일 밤 울산공장 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3차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까지 집행부의 사퇴 여부를 놓고 장시간 논란을 빚었다.

결국 '노조의 생명은 도덕성'이라며 상당수 현장 노동조직 소속의 대의원들이 거세게 제기한 집행부 사퇴여론을 막지 못하고 노조는 새 집행부를 뽑기 위한 조기선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노조는 즉각 사퇴하라는 요구에도 당장 집행부가 총사퇴하지 않은 채 조기선거만 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
따라서 노조 내부 일각에서는 "사퇴는 언제 하겠다는 의미냐"는 등의 비난이 나오고 있어 13일 조기선거 일정을 결정하는 노조 확대운영위원회에서는 사퇴 일정을 놓고 또다시 격론이 예상된다.

노조는 조기선거를 하겠지만 내년 초까지 예정된 산별노조 전환을 완성한 뒤 선거를 하겠다는 입장이 완고해 당장 사퇴하라는 상당수 현장 노동조직들간 노노갈등이 전망되는 등 앞으로의 현대차 노조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장영은 기자 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