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4일 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보급이 참석한 부동산 점검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집중 논의된 것이 시중유동성 축소 방안이었고,대책으로 나온 것중 하나가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 완화다.

해외 투자 확대책이 외환시장 발전이나 환율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집값 안정을 위한 '내수용' 목적에서 나온 것이란 얘기다.

그러다보니 주변 여건은 전혀 살피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달 초 '해외 부동산 버블'을 경고했을 정도로 해외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있는 시점이어서다.

집값 잡기에 급급하다 보니 투자자들의 피해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해외 투자로 집값 잡겠다?

정부는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외화 송금한도를 현행 100만달러에서 300만달러(약 30억원)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국내에서 부동산 투자에 쓰일 돈이라면 차라리 해외에 나가서 외국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일 "한국 내 투자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려 말썽이니,지구적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집값 안정을 위해선 11·15대책에서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와 더불어 시중에 지나치게 풀려 부동산 투자에 쏠리고 있는 돈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차원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쪽으로 물꼬를 더 터주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부동산 투자를 활성화하면 국내에 넘쳐나는 달러도 해외로 유출돼 원·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을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하필 외국 부동산 꺾일 때'

정부의 이번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 조치는 시기상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주로 한국인들이 투자하는 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거품 우려 속에 꺾이고 있는 마당에 투자확대를 유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규제는 외환자유화 차원에서 완화하는 게 맞지만 타이밍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재경부는 지난달 초 '해외 부동산 취득실적과 동향'자료에서 "최근 미국 등 세계적인 금리인상 움직임에 따라 부동산 거품 경고가 계속 언급되고 있다"며 "해외 부동산 투자자,특히 투자목적의 주택취득인 경우 신중한 자세가 요망된다"고 경고까지 했던 터다.

그러던 재경부가 한 달 만에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를 완화키로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 청와대 '적극적'…더 풀 수도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를 푸는 데는 청와대가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당초 해외 부동산 취득용 송금한도를 이번에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현재 2008~2009년께로 잡혀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용 송금한도 폐지 시점도 내년 중으로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청와대가 국내 유동성 축소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지금 고삐를 당겨 놓지 않으면 내년 봄 집값 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다.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유동성을 축소하지 않으면 집값이 언제 다시 뛸지 모른다는 게 청와대 시각"이라며 "특히 내년 봄 이후 집값이 또 오르면 대선 국면에선 통제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걱정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해외 부동산 투자 확대 외에도 추가적인 유동성 축소대책이 또 나오지 않을까 주목된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