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사퇴나 재신임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5월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한 이후 수 차례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전부를 건 듯한 승부수를 띄웠다.

2003년 10월 불법 대선자금이 불거질 때도 "재신임을 받겠다"고 말했고,지난해 4월 재·보선 참패 후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고 매머드급 파장을 일으키는 발언을 쏟아냈다.

노 대통령의 28일 국무회의 발언 역시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의 지명 철회로 대통령직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는 상황 인식에 따른 위기 의식의 표출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표결거부에 대해 "명백한 헌법위반 행위이며 부당한 횡포"라고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상황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둘러댔다.

이른바 '식물 대통령'으로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인사권이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있어서 권한 행사가 대단히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한 뒤 '본론'을 꺼냈다.

'당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와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는 국회 협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끝까지 잘해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직을 내걸면서 정치권 전반에 강력한 위기감을 조성,국정운영에 더 이상 뒷다리를 잡지말라는 협박과 엄포성 발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지지율이 한자릿수대로 추락하고 인사권마저 무력해진 상황에서 나온 자포자기식(式) 발언이자 또 한 번의 '벼랑끝 전술'로 큰 의미를 둘 필요조차 없다는 냉소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조차 이날 발언이 노 대통령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면서 민심이반을 가속화하는 결정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느 경우든 관심은 이제 노 대통령의 다음 행보에 쏠리고 있다.

청와대는 일단 청와대 참모에 대한 인책이나 정연주 KBS사장,이재정 통일부·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철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더 이상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당 지도부의 재초청 계획도 아직까지는 잡지 않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당·청 결별이 불가피하다는 인식하에 통치기반 확보와 비상시국의 정면돌파를 위해 그동안 엄포에만 그쳤던 탈당과 중립내각 카드를 뽑아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경우 시점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때나 내년 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