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대응책으로 일각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규제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한국은행은 대출 규제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표정이다.

대신 지금의 부동산 가격 급등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시중의 과잉 유동성이라는게 한은의 시각이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급 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중앙은행이 부동산 시장을 표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으나 내심으로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뚜렷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내수경기 부양을 이유로 2004년 8월과 11월 두차례 콜금리를 인하했으나 경기가 화끈하게 살아나는 소기의 성과보다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부동산 광풍을 초래한 책임에 금통위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금통위가 지난해말부터 부랴부랴 콜금리를 올려왔으나 여전히 시중에는 유동성이 과잉인 상태라는게 한은의 판단이다.

바로 이런 과잉 유동성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계속 부동산 시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금통위가 매월 콜금리 조정 결정후 발표하는 성명인 `통화정책방향'에는 "시중의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 또는 "전반적으로 유동성 사정이 원활하고.."라는 표현으로 과잉 유동성 상태임을 시사하는 문구가 3년째 빠짐없이 들어가고 있다.

금통위가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5월부터이고 2003년 10월 이 성명에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표현이 담긴 이후 올해 10월까지 36개월 연속으로 이 문구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통화당국이 시중의 통화량이 3년째 적정수준을 초과하고 있다는 정책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융기관유동성(Lf) 증가율은 올해들어 매달 7%대(평잔 기준, 작년 동월대비)를 계속 유지하다 9월에는 8%대 중반으로 올라섰다
또 현금과 요구불예금, 만기 6개월 미만 금융상품을 포함하는 단기 유동성자금은 8월말 현재 509조8천억원(말잔 기준)에 달한다.

이들 자금 가운데 상당수는 기업들의 결제성 자금이지만 일부는 약간만 건드려주면 금방이라도 한쪽으로 쏠리는 양상을 보이며 부동산 시장에도 이런 자금들이 가격 폭등을 유도하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과잉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통해 집값을 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게 한은의 기본 입장이다.

또 대출규제 방안이 담보인정비율 축소가 됐건 대출총량 규제가 됐건 시장에 초래하는 부작용 역시 만만찮을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우선 국민총소득(GDI) 증가율이 1%에 불과한 가운데 민간소비 증가율이 4%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가계가 은행 대출을 통해 소비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여기에 대출을 억제할 경우 민간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정부가 추진하려는 경기 부양과도 모순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게다가 대출총량 규제라는 발상 자체가 시장기능을 완전히 도외시한 것이라는게 금융권 전체의 반응이다.

금융감독당국이 올해 6월부터 창구지도라는 형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의 총량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4,5월 두달간 3조원을 초과하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7월에 2조3천억원, 8월 1조3천억원 등으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그러나 9월에는 다시 2조5천억원으로 늘었고 10월에도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대출총량 규제가 대출수요 자체를 다음달로 이월시켰을 뿐 근본적인 수요 자체를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한은이라고 신통한 해법을 갖고 있는게 아니다.

경기 흐름을 생각하면 집값을 잡겠다고 콜금리를 인상할 수도 없는 처지다.

여권에서는 오히려 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해소하자면 콜금리 인상밖에 없지만 낮은 물가 수준, 저성장세의 지속 등으로 인해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빠져있는게 지금의 한은이 처한 현실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