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국제 금융 질서가 그렇게 짜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점은 취하고 나쁜 영향은 사전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펀드자본주의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각각이다.

기업과 경제를 투명하게 하고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역할에 대해선 대부분 긍정적이다.

펀드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경영진의 독선을 견제하고,벤처투자를 북돋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은 권장해야 겠지만 과도한 경영 간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견제하는 한국적인 펀드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펀드의 시장교란 논란

사모투자펀드(PEF)인 FG10은 불과 9개월 전 인수했던 MK전자 주식 42%를 지난 12일 대우전자부품에 554억원에 전격 매각,약 200억원의 차익을 냈다.

법정 보유기간은 지켰지만 인수 당시 기업설명회 등을 통해 장기투자를 다짐했던 것과는 다른 행동이다.

MK전자 주가는 매각 다음 날부터 약세를 보여 2주 동안 20% 넘게 떨어졌다.

무죄판결이 나긴 했지만 삼성물산에 대한 영국계 헤르메스펀드의 행보도 입방아에 올랐다.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적대적 인수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직후 지분을 처분했기 때문이다.

소버린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중장기 투자를 다짐했던 ㈜LG와 LG전자를 6개월 만에 처분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도 장하성이라는 명망가의 입을 통해 투자기업의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발언을 쏟아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증권(퀀텀펀드) 극동건설(론스타) 등의 사례에서는 투자자금 조기 회수를 위한 펀드들의 무리한 구조조정이 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목격됐다.

유정상 PCA자산운용 본부장은 "단기 차익 실현에 치중하는 일부 사모펀드와 슈퍼개미들의 '치고빠지기'식 시장교란 행위도 펀드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어두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

펀드자본주의의 도래는 우선 펀드권력과 기업경영권의 충돌 현상을 낳는다.

펀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경영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적대적 M&A에 대한 규제는 폐지됐지만 경영권 방어장치는 빈약한 비대칭적인 상황 때문이다.

이영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펀드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수준에서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경영권 보호에 적극적이다.

일본은 다국적 헤지펀드 등의 위협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완책을 서두르고 있다.

신인주인수권을 활용한 독약조항,복수의결권주 허용 등이 검토대상이다.

미국은 헤지펀드의 등록·공시제도를 강화하고,규정을 안 지킨 펀드를 퇴출시켜 시장 교란을 막고 있다.

회사 경영진과 일반 주주와의 이해 충돌도 새삼 관심이다.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펀드 공격을 받을 경우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살피기보다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해 기업 가치의 하락을 가져오는 타협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운용사에 대한 견제 필요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펀드와 투자기업의 관계는 맘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쿨'한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펀드의 경영 개입은 난센스"라는 설명이다.

김범석 한국투신운용 사장도 "공모펀드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경영에 개입해 불안을 조장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운용사의 지배구조 개선도 중요한 포인트로 부각되고 있다.

이영주 수석연구원은 "바람직한 펀드투자 문화를 만들려면 우선 펀드를 책임진 운용사들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합리적으로 펀드를 운용하도록 금융당국이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재룡 사장은 "퇴직연금 국민연금 등과 같은 장기투자자들이 단기펀드들의 무리한 요구를 견제해 내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