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피우는 담배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가짜담배가 전국에서 활개치고 있다. 유흥업소, 나이트클럽, 당구장 등의 공공장소에도 가짜담배의 검은 연기가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가짜담배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자칫 흡연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짜 던힐’ 등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며, 누구에게 팔리는가?

시장을 교란시키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가짜 담배'의 유통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취재 = 권오준 ․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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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세요. 우리나라는 가짜담배 천국이에요.”

한국담배판매인회의 하종철 실장은 흥분했다. 하실장은 “가짜담배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러다간 한국이 가짜담배 천국이 될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한국담배판매인회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서울 종로지역에서 불법유통담배에 대한 자체 단속을 벌였다. 단속 6개월간 56건, 29만3,161갑을 적발해 경찰에 고발했다. 적발된 담배품종은 던힐 등 다양하다. 이중 “던힐이 50% 이상”이라는 것이 하실장의 귀띔이다. 그는 “종로에서 이 정도면 전국적으로는 오죽하겠느냐”며 “조만간에 심각한 사회이슈로 불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짜담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정부의 단속이 있었지만 불법유통되는 가짜담배의 검은 연기는 여전히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다. 올 들어 6월까지 적발된 밀수담배는 73억원어치다. 이미 지난 한 해(112억원) 동안 적발된 금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본지 취재진은 남대문 수입상가와 종묘공원 등에서 던힐 등 고급 외산담배와 니드 같은 저가 외산담배가 버젓이 팔리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면세’(Duty Free)가 선명하게 찍힌 ‘던힐’의 경우 남대문 수입상가 2층에서 한 보루에 2만원(시가 2만5,000원)을 주고 살 수 있었다.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등에서는 니드, 해피 등 동남아산 저가 담배를 800~1,000원에 구입했다. 밀수담배 전문가들은 지금도 부산에서 ‘깡통시장’으로 불리는 국제시장에서는 아무나 불법유통되는 가짜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며 개탄했다.

길거리나 시장뿐만 아니다.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노래방 등 공공장소도 가짜담배가 활개치고 있는 장소다. 지난 3월 가짜담배 유통조직을 검거한 서울시경의 수사 관계자는 “불법유통되는 밀수담배의 상당수가 유흥업소로 흘러들어갔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가짜담배가 무더기로 팔려나가고 있다. 인터넷은 미성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M사는 서울시 세정과에 사업계획서를 골프장 뱀 퇴치용으로 기재한 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저가 담배를 시판하고 있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실이 온라인으로 담배를 불법 판매하는 현황을 조사한 결과(2006년 2월 말)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N사와 D사의 12개 카페에서 조직적으로 담배가 대량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 이들은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들’, ‘해외에서 담배 싸게 구입하기’, ‘담배가게’ 등의 카페를 열고, 밀수·가짜·군납·장물 담배 등을 허가 없이 온라인상에서 팔았다.

이러다 보니 유통되는 가짜담배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관세청의 ‘가짜담배 밀수 적발 현황’(불법유통되는 진품은 제외)을 보면 2004년 단 1건에 불과했고 수량도 4만4,400보루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2005년 3건, 29만6,350보루(59억2,700만원)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는 폭증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8건에 100만보루가 적발됐다. 금액도 60억8,700만원으로 지난 한 해치를 뛰어넘었다. 통상 적발된 담배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담배의 10% 미만이라는 것이 밀수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밀수업자들이 한국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짜담배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가짜담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응책이 없는 상태다. 더구나 아직 국내에서 불법유통되는 담배의 비중이 1% 미만이라는 점을 들어 공론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일각의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세계 담배시장에서 밀수담배 규모는 6%에 달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문제로 떠올랐다는 뜻이다. 연간 500억본이 위조되는 중국이 이웃나라라는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중국의 가짜담배 제조기술은 타르와 니코틴까지 진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했다. 성분분석을 통해야만 옥석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산 가짜담배가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가능성은 농후한 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업계에서는 밀수담배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로 담뱃값 인상을 꼽고 있다. 2005년 들어 밀수담배가 급증한 것은 2004년 말 담뱃값을 인상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정부는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을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의 계획대로 5,000원까지 오를 경우 가짜담배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세청이 각 지역 세관을 통해 국내 유입 자체를 엄중 감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효과는 의문이다. 수많은 선박의 컨테이너를 샅샅이 검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반론이 만만찮다. 국내에서 이익을 많이 내는 대형 외산 담배업체들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던힐을 판매하는 BAT코리아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일은 세관을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가짜담배의 잇단 적발로 흡연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담배 구입에 신중을 기하는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평소 외산 담배를 즐겨 피운다는 회사원 L씨(40)는 회사 구내매점이나 대형할인점 등 확실한 곳이 아니면 담배 구입을 꺼린다. 가짜담배가 활개치고 있다는 TV뉴스를 본 이후부터 바뀐 습관이다. L씨는 “제조환경이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중국산 가짜담배에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아마도 담배를 끊어야 할 모양”이라고 말했다.

jun@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