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보호자님 빨리 오세요.

내과 A선생님께서 찾으십니다."

건국대부속 동물병원 내 가족 대기실에서 흘러나오는 구내 방송이다.

'신디'는 갈비뼈 연골에 암 종양이 생겨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

보호자 최진용씨(29)는 결혼한 지 막 두 달 된 신랑이지만 신혼여행도 미룬 채 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복도 한 켠에는 진단 결과에 울음을 터뜨리는 또 다른 환자의 가족들도 눈에 띈다.

이곳의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애완견이나 고양이 등이다.

애완동물을 인생을 함께하는 '반려동물'로 여기는 주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시장이 경기 흐름과 관계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백내장이나 당뇨병,심장병,디스크,암 등 고급 의료서비스의 발전상이 괄목할 만하다.

애완동물 중에서는 개의 비중이 95%로 가장 높다.

여기에는 1990년대 초·중반 태어난 강아지의 상당수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영향도 크다.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기초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 수명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통상 10살을 넘기기 힘들었던 개의 수명은 최근 13~19세로 연장됐다.

15세는 사람으로 치면 65~70세 노인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미용이나 간단한 질병치료,예방 접종 등을 담당하는 동네 소형 동물병원에서 애완견을 치료하기 힘들어 최첨단 장비를 갖춘 사립 종합병원이나 대학 부설 동물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애완견도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동물병원에서 진단서를 첨부하면 2·3차 의료기관에서 고난도 치료나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서울대 동물병원 내과 진료부장인 황철용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전염성 질병이나 장염 등 소아질병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고령화에 따라 암 치매 디스크 피부병 등 노인성 질환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치료 과정에서 엑스레이는 기본이고 컴퓨터단층촬영기(CT),자기공명영상촬영기(MRI),혈액투석기 등 고가 장비들이 사용된다.

현재 애완동물의 2차 의료기관으로 분당의 해마루와 서울 중화동의 24시간로얄동물종합병원 등이 성업 중이다.

3차 의료기관은 서울대와 건국대를 포함,수의학과를 보유한 전국 10개 대학의 부설병원이다.

서울대와 건국대 부설 동물병원의 경우 지난해 내원 환자 접수건수가 각각 1만건(복수 왕래 포함)을 넘어섰다.

진료비를 기초로 한 매출 규모도 양 병원을 합치면 2000년 6억4300만원,2001년 9억5700만원,2002년 14억원,2003년 18억6700만원,2004년 19억8000만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정순욱 건대 동물병원 원장은 "1995년과 비교하면 매출 규모는 13배가량 성장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시스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서울대와 건국대를 비롯 상당수 대학 부설 동물병원과 대형 사립병원들이 2000년 이후 진료분야를 내과 외과 산과 방사선과 피부과 신경과 등으로 한층 세분화했다.

학부(6년) 과정을 마치고 수의사 자격증을 획득한 졸업생 중 일부를 2~3년간의 별도 수련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인턴·레지던트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수준 높은 임상 수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다.

다만 애완동물 의료시장은 아직 진료비 기준시가도 정해져 있지 않고 보험 시스템도 미비,보호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처음 내원한 경우 각종 검사비로만 10만~50만원이 소요되고 며칠 입원하면 1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2500만원짜리 인공 심장박동기를 단 애완견도 있다고 한다.

보호자들의 애완동물 사랑은 인간을 빰칠 정도다.

콩팥에 생긴 담석을 제거하고 심장병 치료를 받은 방울이(6·시추)의 보호자 권영남씨(45·의정부)는 "애완동물은 제2의 가족"이라며 "끝까지 치료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건국대 수의학과 박희명 교수는 "경제적인 부담감으로 애완동물을 병원에 기증하는 경우는 있지만 보호자가 원해 환자를 안락사시켜 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