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부 광둥성에서 7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L사장.

그는 요즘 쓰촨성 간쑤성 등 내륙지방을 돌아다니는 게 중요한 일이 됐다.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옮길 공장터를 찾기 위해서다.

아크릴로 머리핀을 만들어 수출하는 이 회사의 공장에서 악취가 난다는 주민의 신고가 발단이었다.

우리의 면 단위에 해당되는 진(鎭)정부는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공장을 봉쇄해버렸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면 조업을 재개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진정부가 추천한 제품을 구입했지만 허사였다.

진정부의 상급인 구(區)정부의 환경국 소속 공무원이 들이닥쳐 "청정기의 성능이 기준 미달이어서 조업을 재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L사장은 "그제서야 나가라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외국기업이 노동,환경,조세면에서 특혜를 누렸던 것은 옛날 일이다. 요즘에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외자라면 뭐든 좋다는 흑묘백묘론(黑苗白苗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식 껴안기에서 환경친화적이고 질 좋은 외자를 선별유치하는 녹묘론(綠苗論)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당하는 일 정도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 4일 톈진에서 두 번째 공장을 완공했다.

1995년에 지은 공장은 팔아버리고 새 공장을 준공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공장을 세우는 데는 10여년 전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었다.

총 투자금액(2억1000만달러)의 10%에 육박하는 2000만달러가 추가 투입돼야 했다.

사연은 이렇다.

1995년엔 타이어가 외자유치 장려업종이었다.

그래서 설비를 들여올 때 거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번엔 다르더군요. 수입관세 8%,부가가치세 17%를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 낸 세금만 2000만달러. 10년 전이라면 절약할 수 있었던 돈이다.

칭다오에서 액세서리를 만드는 중소회사들이 시외곽으로 이전하라는 압박을 받는 것처럼 삼성 등 대기업들까지도 톈진 선전 쑤저우 등지에서 도시재개발 등을 이유로 시 중심가에서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엔 다국적기업 경영자라면 총리도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부총리도 만나기 어렵다"는 한국 굴지의 대기업 중국지주회사 모 임원의 탄식도 옛 얘기가 돼버렸다.

자국산업보호를 내세워 외국자본을 거부하는 '경제국수주의'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초 중국 최대 철도용 베어링업체인 뤄양조우청 인수전에 민영기업인 저장톈마가 갑자기 뛰어들어 판세를 뒤집었다.

독일 서플사의 인수가 거의 확실시됐던 싸움에서 예상치 못한 저장톈마의 개입은 중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최대 건설장비 업체인 쉬공 인수전도 외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달라진 시각을 잘 보여준다. 이 회사는 작년 10월 미국 칼라일이 인수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정부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달 중국 토종기업인 산이그룹이 쉬공을 인수하겠다고 선언,외국 기업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KOTRA 이종일 베이징관장은 "중국 대만 홍콩 기업이 법규를 안 지키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같은 민족기업이고 그들과 상급 기관이 밀착돼 있어 규제를 덜 받는 것 같다"며 "그러나 외국기업에 대해선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법을 지키고 기술을 고도화하지 않고는 점점 더 어려움을 맞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