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비리를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이 금품수수 의혹을 받는 A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사법처리 의지를 보이면서 현직 법관이 정식재판에 회부되는 사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직 법관이 형사 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된 것은 2004년 서울남부지검이 경찰관 폭행 혐의로 판사 K씨(현 변호사)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한 것 등을 포함해 극히 일부 사례가 있다.

그러나 검사가 낸 서류만으로 벌금이나 과료 또는 몰수의 형을 선고하는 약식 기소 절차나 즉결심판(20만원 이하 벌금형 또는 30일 이내 구류형 등이 예상되는 경미한 범죄 대상)이 아닌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이 고법 부장판사를 기소할 경우 현직 최고위직 법관이 기소돼 정식 재판에 회부되는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검찰 기소를 전후해 법원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도 주목된다.

법관의 경우 헌법(106조)에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으며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정직ㆍ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어 스스로 사직하지 않으면 신분 박탈은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 공무원은 형사 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국가공무원법(73조의 3)에 의해 직위해제가 가능하지만 법관은 법관징계법(3조)상 징계 유형이 정직ㆍ감봉ㆍ견책 등 3가지 뿐이어서 정직이 가장 무거운 징계인 셈이다.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한 경우'ㆍ`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킨 경우' 등 징계 사유에 해당돼 정직 처분을 받으면 1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기간 직무집행이 정지되고 해당 기간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검찰이 만약 기소 결정을 내리면 법원은 혐의 내용을 판단해 법관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직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법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도 법조계 안팎의 큰 관심거리다.

금품수수 액수가 크다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지만 그리 크지 않다면 영장이 청구돼도 최근 법원이 강조하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따라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현직 법관의 경우 신분이 확실하고 검찰 소환조사에도 매번 출석해 응하고 있어 도주 우려가 없고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간 진술이 불일치하는 뇌물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직 법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도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직 법관이 구속된 사례는 과거 자유당 치하 부산 피난정부 시절 `국민방위군'사건과 관련해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현직 판ㆍ검사 3명이 구속되고 환도 후 서울지방법원장이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국가 체제가 비정상적인 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구속영장이 청구된 유일한 사례는 1971년 `사법파동' 때다.

서울지검이 1971년 7월 반공법 위반사건 심리차 제주도로 출장갔다가 변호사로부터 1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서울형사지법 항소부의 이모 부장판사와 김모 판사, 이모 서기관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영장은 군사정권이 반공법 위반 사건에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탄압하기 위한 의도로 청구한 것이어서 기각됐으며 법관 39명이 집단사표를 제출하는 등 파문이 일자 대통령이 수사중지 명령을 내려 `사법파동'은 끝났다.

이번 고법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의혹은 개인비리여서 과거 사건과 전혀 다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법원이 엄격한 자체 징계를 내려야 하며 검찰도 철저히 사실을 따져 신중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