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의도된 수사 아니길"…檢 "수사에 역풍불까 걱정돼"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사가 법원 쪽으로 확대되자 법원과 검찰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 실추를 우려하는 법원과 비리 단서 포착 땐 예외 없이 수사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검찰이 일부 법관 등의 개인비리 의혹을 놓고 `조직 자존심' 차원에서 충돌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 양상이 갈수록 심해지자 법원과 검찰의 무모한 힘 겨루기의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는 검찰, 판결은 법원'이라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法 "다른 의도로 수사해서는 안돼"

현직 법관들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사법부의 신뢰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피나는 자정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검찰의 수사 의도에 대해서는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대법원의 한 법관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고 국민에게 다가서는 사법부가 되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자정노력이 미흡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뼈저리게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사안이 워낙 중대한 만큼 우선 신중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해야겠지만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만큼 과거처럼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의 수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법관이 국민에게 기대하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텐데 어떻게 재판을 해야 할지 걱정된다"며 말했다.

이러한 자성의 태도와 달리 일선 검사의 금품수수 혐의가 드러나자 비난의 촛점을 법원으로 돌려 흠집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금품을 받았더라도 형량을 떨어뜨리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대가성 뇌물이 아니라면 검찰이 사법부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무모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경 법원의 한 일선 판사는 "지금까지 현직 법관이 금품 수수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일이 거의 없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건 당사자들이 법관을 로비나 받고 형량을 낮춰주는 파렴치범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자와 친분관계라면 오히려 검찰 쪽이 더 많을 텐데 수사가 법원에 집중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법원의 한 법관도 이번 사건을 `사상 최악의 사태', `총체적 난국'으로 표현하면서 "의도가 있는 수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검찰 수사의 순수성을 의심했다.

◇檢 "다른 수사 차질 우려스럽다"

법원의 반발 기류가 예상 외로 거세지자 수사권이라는 검(劍)을 쥐고 있는 검찰이 오히려 좌불안석이다.

금품수수 단서가 포착돼 수사를 시작했지만 법원이 영장 기각 등으로 다른 사건 수사에 제동을 걸고 나선다면 검찰이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직 고위 법관이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단계도 아닌데 검찰이 수사상황을 생방송 하는 거냐"는 압력성 발언을 했다는 말이 나돌자 검찰은 행여 법원발 역풍이 불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검찰청의 한 중견검사는 "혐의가 있는데 수사대상자의 신분이 판사라는 이유로 수사를 중단해야 하느냐. 판사와 검사, 변호사, 경찰이 모두 연루돼 있는데 법원을 타깃으로 삼아 의도적으로 수사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검찰 수사를 좌지우지하는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등이 기각되는 사태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입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을 시도한 피내사자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반면 정작 체포영장은 기각한 이면에는 김홍수 사건 수사에 대한 법원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무성하다.

일부 검사들은 수년 전 일선 판사를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하려 했던 검사가 변호사 개업 뒤 사건을 수임하자 재판부가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된 피고인을 정식재판에 직권 회부해 징역형을 선고한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검의 한 중견검사는 "대검 중수부는 물론 일선 검찰청의 특수사건 수사가 앞으로 가시밭길이 될 수 있다.

개인비리를 놓고 법원과 검찰이 부딪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며 고민스런 속내를 드러냈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임주영 기자 ks@yna.co.kr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