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산본시에 사는 이미애씨(32·전업주부)는 일찌감치 둘째아이 출산을 포기했다.

공무원인 남편 월급(평균 270만원)으론 도저히 둘째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서다.

매달 70만원이 들어가는 일곱 살 난 딸 아이 유치원비 등을 생각하면 그렇다.

"영어 유치원(45만원)에 보내고 피아노(12만원)와 학습지 2개(9만원)만 시키는 데도 월 66만원이 듭니다.

세 식구 기본 생활비 120만원를 빼고 나면 보험(30만원)과 적금(50만원) 붓기도 빠듯하지요.

둘째 가질 엄두가 어디 나겠어요."

기혼 여성의 출산을 가로막는 여러가지 요인 중 무시할 수 없는 게 사교육비 부담이다.

사교육비는 중·고등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조기교육 열풍이 불면서 5~7세 아이들에 대한 영어·예체능 교육비는 중·고생 뺨칠 정도로 많이 든다.

특히 맞벌이를 하지 않는 가정은 부담이 더 크다.

맞벌이 가정은 아이 돌봐줄 곳이 없어서 출산을 주저하지만,홑벌이 가정은 사교육비가 겁나 아이 낳기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출산 친화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선 사교육비부터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출산 가로막는 사교육비

사교육비 부담이 출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분명하다.

보건복지부가 올초 20~44세 연령층에 속한 전국 기혼여성 38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출산 계획은 있지만 연기한 첫 번째 사유가 교육비 부담(43.9%) 때문이었다.

다음은 소득·고용 불안정(25.4%),여가 및 자아성취(7.2%),출산건강수준 저하(4.6%) 등이었다.

특히 가구소득이 평균 이상인 중산층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었다.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293만7500원)의 100~120%와 120~150% 사이의 가구 중 각각 44.5%와 48.8%가 교육비가 부담스러워 출산을 중단했다고 답했다.

또 자녀가 있는 가구 중 전체 생활비에서 자녀 교육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응답한 가구는 전체의 절반을 넘는 51.7%를 차지했다.


그나마 자녀가 1명일 때는 그 비율이 23.8%에 그쳤지만 2명이 되면 59%,3명 이상은 63.8%에 달했다.

○도대체 얼마나 들기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3년 전국 1만6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아동 1인당 교육·양육비는 월 75만4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사교육비는 14만5000원으로 공교육비(12만6000원)보다 많았다.


가구당 월평균 교육·양육비는 132만1000원으로 월평균 소득(285만4000원)의 46%,월평균 소비지출(233만5000원) 중에선 56.6%를 차지했다.

월평균 소득·지출의 절반 정도를 자녀 교육에 쓰는 셈이다.

○쉬운 것부터 실천을

'공교육 내실화' 등의 주장은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사교육비 문제를 교육제도 개편과 같은 큰 틀 속에서 푼다는 것은 그간의 사례에서 보아왔듯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현가능성이 높은 문제부터 서둘러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단적인 사례가 영어 사교육비다.

가장 고가이고,유치원 아동부터 초·중등 학생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교육비는 단연 영어과목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줘야 한다.

초·중등학교에 지금처럼 영어시간이 적어서는 곤란하다.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고 원어민 교사를 확보해야 한다.

파주 영어마을처럼 지자체가 앞장서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영어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영어라는 것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영어 학원비만이라도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영어 문제만 해결되도 사교육비 부담의 절반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이 학원을 다닐 경우 정부가 해당 학원에 직접 지원금을 주는 '바우처 제도(교육비지급보증제도)'도 효과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

과감한 예산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