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 시인 >

며칠전 출판계의 한 인사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았다.

내용인즉 10년 전 내가 소개해 구입한 이중섭의 그림이 미술관에 전시중인데 그 그림이 가짜라는 기사가 한 일간지에 크게 실렸다는 것이다.

6호크기의 그 그림은 30여년 전 이중섭과 남달리 친분이 두터운 K시인이 소장해오던 것을 내가 심부름했던 것이다.

이미 미술전집에도 여러 차례 수록됐었고 그림의 소장 경위와 양도경위도 분명할 뿐 아니라 K시인과 나,현재 소장자와 중간 소장자 모두 왕래가 빈번한 사이였다.

무엇보다도 근대미술의 권위있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던 작품이었다.

몇 해 전 K시인이 타계하셨지만 그림의 출처와 양도의 경로는 유리알처럼 투명한 것이어서 어느 한 군데 의혹을 가질 만한 틈이 없음에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어느 젊은 미술 감정가가 '가짜!' 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2500년 전 중국의 제(齊)나라는 노(魯)나라에 큰 청동솥을 보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노나라의 궁궐에서는 고민 끝에 모조품을 만들어 제나라에 보냈다.

4세기 초 뒷날 서예사에서 서성(書聖)이라 불렸던 왕희지(王羲之)는 장익(張翼)이라는 사람이 자기 글씨를 흉내내어 쓴 것을 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식별을 못했다 하니 미술품의 모작,또는 위작의 판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짐작케 한다.

문제는 미술품을 예술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재산가치로 보는데서 위조화폐를 찍는 것 보다도 손쉽고 형벌도 낮은 점을 이용해 악덕상인들에 의해 제작되고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미 많은 고증과 전문가들의 평가를 거친 우리 문화유산들을 어떤 기준도 과학적 검증도 없이 함부로 훼손하려 든다면 그 해악은 세계문화유산을 불지르는 방화범보다 더 크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짜라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국보급,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모조품을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그 세계를 넘겨다 볼 수 있게 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청나라의 건륭(乾隆)황제는 유실돼가는 한(漢) 당(唐) 송(宋)대의 옛 벼루 모양을 그대로 만들게 해서 자신이 직접 글귀를 써서 새겨 넣도록 했다.

명명백백한 가짜벼루인데 지금은 베이징 경매시장에서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을 넘게 호가하는 희귀명품으로 팔리고 있다.

언론사 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어느 자리에서 이중섭 화백과의 일화를 밝힌적이 있었다.

자신이 학생시절 대구의 한 여관에서 심부름을 했는데 마침 이 화백이 그 여관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매일 이중섭의 방에서 나오는 담뱃갑 은박지며 이러저러한 종이장에 스케치한 그림을 불쏘시개 감으로 태운 것이 수백 혹은 수천장이었다고 했다.

만약 그 소년이 이 화백의 그림을 알아보고 모아 두었다가 내놓았다면 진품으로 믿는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미국으로 이민간 후 세상을 뜬 소설가 C선생은 장판지에 그린 이중섭의 춘화도 한 묶음을 다락에 처박아 두었는데 나이든 딸이 그것을 아버지 몰래 불태웠다고 내게 들려준 일이 있다.

그 춘화도가 불에 타지 않고 남았다면 또한 말썽이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어찌 그림뿐이랴. 인사동 골동가에서 청자 백자 추사글씨 등 값을 높이 받을 수 있는 미술품일수록 진짜 가짜를 놓고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의 미술품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서 몇 백만달러로 팔리기도 할 만큼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근대미술이나 고미술에 대한 권위있는 감정의 장치를 마련해서 가짜가 진짜가 되거나 진짜가 가짜로 둔갑하는 어이없는 해프닝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