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앞만 보다 물의 일으켜…국민께 죄송"

"앞만 보고 오다 보니 여러가지 법적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심려를 끼쳐드린 국민께 죄송합니다"

회삿돈 797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오 부장판사) 심리로 형사 대법정에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서 모두진술(冒頭陳述) 기회가 주어지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현대차를 세계적 회사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점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반성하고 있다"며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못을 바로잡아 경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파란색 바탕의 줄무늬 수의를 입은 채 천천히 법정으로 들어온 정 회장은 거물급 인사로 짜인 호화 변호인단의 지원사격을 받았음에도 극도로 긴장한 듯 주민등록번호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말을 더듬었다.

이날 공판은 검찰 기소요지와 변호인측 모두진술만 듣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양측의 주장은 향후 재판의 예고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예리했다.

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직접' 지시했고 현대차 계열사 등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강조한 뒤 "피고인이 현대계열사를 부실 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토록 한 것은 `경영판단'이 아닌 명백한 배임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 회장측 변호인들은 저마다 변론의 주제를 하나씩 맡아 반박에 나섰다.

박순성 변호사는 "이 사건에 나온 비자금은 대부분 회사의 대내외적 용도로 사용됐으며 배임 등으로 기소된 부분은 IMF 외환 위기 이후 그룹 전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변론했다.

대법관 출신인 정귀호 변호사는 "경영상의 공백과 우리 경제의 먹구름이 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고인에 대한 보석은 시급한 일이다"며 `보석 불가피론'을 제기했다.

정 변호사는 "고희(古稀)를 앞둔 피고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며 "죄를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듯이 현대차로서는 `대들보'에 해당하는 피고인에게 보석을 허락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재진 변호사는 "최근 국민들이 국가대표의 독일월드컵 선전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며 "현대차가 독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 도요타를 제치고 선정됐지만 피고인의 구속으로 국제적 홍보가 어려워졌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재판은 변호인측이 이례적으로 모두진술에 긴 시간을 할애하면서 1시간여만에 마무리됐다.

한편 개정 2시간여 전부터 법원에 도착해 있던 현대차 관계자들과 취재진 등 200여명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일부 방청객들이 법정 옆 통로에까지 늘어설 정도로 재판은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이번 사건 기소 대상자로 거론되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비롯해 이전갑ㆍ설영흥 현대차 부회장 등 그룹 임원진도 방청석에 앉아 `그룹 총수'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prayer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