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세요,아저씨.번호표 찾아요? 35번하고 60번에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서 있으니까 골라봐요."

판교신도시 민간 임대 미계약 물량에 대한 마지막 선착순 계약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밤 11시.분당 정자동 주택문화전시관 내 광영토건(부영 사랑으로) 모델하우스를 서성거리는 기자에게 40대로 보이는 이른바 '떴다방' 업자가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35번 번호표는 200만원,60번은 100만원만 내요.좋은 층수를 고르려면 35번이 좋아요."

잠시 뒤 밤 11시30분.호루라기까지 동원한 '떴다방' 10여명이 운집한 사람들을 향해 "지금 새 번호표를 못 받으면 탈락한다"고 소리쳤다.

누군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1시간마다 도장과 번호가 적힌 새 번호표를 나눠주는 것"이라며 "선착순 물량을 받으려면 60~70번은 받아야 안정권"이라고 귀띔한다.

물량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이들이 나눠준 번호표는 자릿세 형태로 은밀히 거래되기도 했다.

확률이 높은 1~10번은 400만~500만원,60~70번 번호표는 300만원까지 호가가 치솟았다.

한 '떴다방' 관계자는 "시민단체들도 요구했듯이 전매 제한 기간을 줄이거나 분양 전환 가격을 낮추는 쪽으로 법이 개정될 테니까 이 정도 웃돈은 싼 것"이라며 은근히 번호표 매입을 권유했다.

무주택 서민용으로 공급된 판교 임대아파트가 투기판으로 전락한 현장 모습이다.

무주택자는 물론 유주택자까지 참여할 수 있는 미분양 선착순 계약 하루 전인 23일 현장에는 낮 12시께부터 일반 투자자와 '떴다방'이 한두 명 모이더니 한밤에는 200여명이 뒤엉켜 동·호수가 좋은 선착순 계약 물량을 서로 먼저 잡기 위해 밤샘 줄서기에 나섰다.

40~50대 주부들은 아예 야외용 돗자리와 이불을 들고 자리를 잡기도 했다.

분양권 불법 전매까지 횡행하고 있다.

23일 오전 먼저 선착순 계약을 시작했던 진원이앤씨 임대아파트의 경우 선착순 물량을 받은 사람이 대기 수요자들에게 300만~400만원 정도의 웃돈을 붙여 현장에서 전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자는 "선착순 당첨을 받은 뒤 증빙서류를 갖춰 계약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바꿔치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난장판에도 건설교통부나 국세청 직원은 물론 단속 요원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주택전시관 입구에 놓인 '투기 적발자 처벌 공고문'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장에서 만난 미계약자는 "돈이 없어 서민들은 계약을 포기하는 판인데 투기꾼들이 모여 있다는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져 확인하러 나왔다"며 "조금 전 어떤 사람도 이 광경을 보고는 한참 울다가 집으로 갔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서민용 임대주택을 유주택자가 사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주택자에게 우선권을 주어 투기판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