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김미영씨(가명·42)는 미국 현지 부동산 에이전트(중개인)에게 속아 비디오가게를 시세의 두 배 가까운 가격에 잘못 인수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머테이오고교에 입학할 딸과 함께 지낼 집을 구입하려던 김씨는 아예 E-2비자(소액투자비자)를 받을 생각으로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한인 교포가 운영하던 비디오가게를 15만달러에 인수했다.

집 구입 비용까지 포함하면 투자자금이 만만치 않았지만,월 5000달러의 고정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에이전트의 말에 인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인수 후 두세 달이 지나도록 월 매출액이 2000달러에도 못 미쳐 이상하게 여겼던 김씨는 주변 상점 주인으로부터 인수 직전 비디오가게 가격이 8만달러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활성화하면서 현지에서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정부가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매입을 허용한 이후 관련 컨설팅업체에는 무작정 유망 매물을 소개해달라는 일반투자자들의 문의·상담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일부 과열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 앞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24일 뉴스타부동산과 루티즈코리아 등 관련 업체에 따르면 해외 현지 에이전트들에게 속아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E-2비자 취득과 관련해 부실 사업체를 인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당 매물을 보여주거나 구체적인 정보는 주지 않고 현지 방문만을 앞세운 알맹이없는 해외 부동산 투어상품에 피해를 입는 일도 잇따라 주의가 요망된다.

○현지 중개인 집값 담합 빈번

국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사기는 현지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가격을 '바가지'쓰는 경우다.

집을 살 사람과 팔 사람을 대신해 집값을 협상하는 매수·매도 양측의 에이전트가 중개수수료 수입을 높이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춰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데서 발생하는 피해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매수자는 중개수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며 매도자만 거래가의 4~6%(서부 기준)에 해당하는 중개수수료를 지불한다.

매수자와 매도자측 에이전트가 이 수수료를 절반씩 나누게 돼 있어 집값을 부풀리는 것이다.

이 같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송금하기 전에 매수자 본인이 현지를 답사해 주변 시세와 해당 주택 상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양미라 뉴스타부동산 과장은 "바가지를 씌운 현지 에이전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도 사실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첫 번째 성공 비결은 믿을 수 있는 에이전트를 만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실 해외 부동산 투어도 조심해야

서울 서초동에 사는 김석민씨(가명·43)는 최근 초등학생 아들의 미국 조기 유학을 위한 주택 구입 건으로 한 여행사가 기획한 해외 부동산 현지 답사에 참여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로스앤젤레스(LA) 등 서부지역 관광을 겸한 해외 부동산 투어라는 말에 솔깃해 참가했지만,5박6일 일정 동안 현지 답사는 불과 반나절 정도였다.

그나마 버스를 타고 LA 근처 최고급 주택가 주변을 돌아보고 주택 시세만 알려주는 정도여서 정작 김씨가 원하는 구체적인 매물 정보나 집 구경 등은 기대할 수 없는 답사였다.

이처럼 현지 부동산 투어를 가장한 '알맹이' 없는 여행상품이 최근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임채광 루티즈코리아 팀장은 "영세 여행업체와 현지 불법 브로커가 결탁해 가격에 거품이 낀 부동산을 알선하는 사례도 많다"며 "현지 사전 답사를 갈 때는 반드시 검증된 전문업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부실 사업체 인수 사기도 많아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인 자녀를 위해 해외 주택 구입을 고려하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은 E-2 비자(소액투자 비자)와 관련한 부실 사업체 인수 사기도 속출하고 있다.

앞서 김씨의 경우처럼 이 비자를 빨리 받으려고 해외 에이전트나 친지 등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E-2 비자는 50만달러 이하의 현지 사업체 운영을 위해 필요한 비이민 비자로 주거용 해외 부동산 투자와 겸해 사업체 운영을 계획하는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아 피해를 볼 개연성도 그만큼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E-2 비자 발급을 앞당길 목적으로 해외 에이전트의 말만 믿고 미리 사업체 인수 자금을 송금해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