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남미와 서구 석유자본 간 충돌이 외교 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중남미·유럽연합(EU) 정상회담(현지시간 11∼13일)에서 자원 민족주의를 둘러싼 양 지역의 갈등이 '장외 설전'을 통해 불거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자원 민족주의 문제가 중남미·EU 정상회담의 의제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삼림자원·농토도 국유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1일 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볼리비아 원주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싶다"며 "석유 외에 광물 삼림자원 농토 등도 앞으로 국유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서구 대형 석유회사들이 (국유화로 인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이익을 내고 있다면 굳이 그들에게 보상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투자 손실에 대한 보상 조치를 마련할 생각이 없음을 시사했다.

이런 와중에 이날 베네수엘라 의회가 셰브론 엑슨모빌 등이 추진 중인 오리노코 유역 4개 석유개발사업의 통제권을 정부가 확보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해 파장이 더욱 커졌다.

지난번 32개 유전 국유화 시책과 같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유전개발 지분을 50% 이상 쥘 수 있도록 하는 권고안이다.

이들 4개 석유개발 프로젝트는 세계 5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산유량의 23%가량(하루 약 60만배럴)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셰브론,영국 BP,프랑스의 토탈 등 서구 대형 석유회사들이 다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총 130억달러가 투자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베네수엘라 의회를 차베스 대통령 지지 세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관련 법안이 제출될 경우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도이체방크는 베네수엘라가 이번 입법을 강행할 경우 코노코필립스가 45억달러의 손실을 보고 토탈은 33억달러,셰브론은 15억달러,엑손모빌도 10억달러가량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적 보호장치 강구하라"

이에 대해 EU측은 발끈했다.

EU 순번 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우르술라 플라스닉 외무장관은 별도 기자회견을 갖고 "볼리비아가 외자에 대해 어떤 법적 보호 장치를 강구하고 있는지 투자자들이 알고 싶어할 것"이라며 "서구 자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로이터통신은 EU가 에너지에서 통신에 이르기까지 중남미에 3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1위 투자국이라며 '적당선'에서 국유화 조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이날 베네수엘라의 4개 석유개발사업 프로젝트에 대한 신용 등급을 하향조정한다고 밝힌 것도 유럽측의 이런 우려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