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7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강정구 동국대 교수와 두산그룹 사건 이후 정착되기 시작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무너지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관련 기업 임직원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정 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주된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법조계의 견해는 다르다.

서울고법 판사 출신의 임정수 변호사(법무법인 한승)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할 때만 해도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인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여부를 엄격히 적용했다"며 "이번에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경우 정 회장에게 그런 우려가 있는지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장시일 변호사도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진실 발견에 지장을 초래할 구체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구속영장 청구가 가능하다"며 "그럴 우려가 전혀 없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의자 또는 참고인으로 수사받으면서 작성된 신문 조서를 변호사가 일일이 확인한다"며 "이 같은 현실에서 진술 번복으로 인해 증거가 인멸될 수 있다는 검찰의 논리는 이해가 안 간다"고 밝혔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이중 잣대'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천 장관은 강정구 교수에 대해 검찰이 구속 의견을 냈을 때 불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의 잔재이며 군사독재 시절의 폐습인 구속 남발을 막고 불구속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강정구 교수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어야 할 원리"라며 "구속이 처벌이고 불구속이 곧 면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구속·불구속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이며 이는 극히 추상적 개념이어서 판단에 따라 현실적으로 재량의 여지가 많다.

검사와 판사 등 담당자들이 깊이 있게 검토하고 신중하게 법 정신에 따라 재량을 통제해야 한다"고까지 강조했다.

두산그룹 관계자에 대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뒤 천 장관은 "불구속 수사 원칙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거듭 천명했다.

그렇지만 현대차 사건이 터진 이후 천 장관은 관련자에 대한 구속 여부 언급을 회피한 채 기업 및 화이트칼라 범죄 엄벌 의지만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들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정 판결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천 장관의 발언이 이번 검찰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현대차 사건은 윤상림씨 사건 등 검찰의 다른 사건 처리 방식과 도 대조적이다.

검찰은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등과 관련된 사건을 5억여원에 수임하고 그 대가로 브로커 윤상림씨에게 1억3500만원을 준 혐의(변호사법 위반)를 받고 있는 김학재 전 대검 차장을 불구속 기소 처리했다.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박용성 그룹 회장을 비롯한 전 임원진을 불구속 기소 처리한 두산그룹 수사와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찰이 정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는 일선 검사들의 입장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

달리 말해 이번 결정은 검찰 조직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중잣대 논란 속에 검찰이 스스로 세워놓은 불구속 수사 원칙을 저버렸다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