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정상명 검찰총장이 다시 장고(長考)에 빠졌다.

26일 오전 대검 청사에 굳은 표정으로 출근한 정 총장은 정 회장 부자의 신병처리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하루종일 고민해 보겠다"고 짧게 답했고 "같이 고민해보십시다"고도 말했다.

현대차 비리 사건을 한달간 집중 수사해온 대검 중수1과 수사팀은 내부 입장을 정리하고 수사 보고서를 정 총장에게 제출했지만 정 총장의 결정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내려질지는 수사팀도 모르는 상태다.

일단 피의자들을 직접 조사하고 범죄 혐의를 포착해 증거를 찾아낸 수사팀 내부에서는 "증거에 따라 사법처리 수위와 범위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검찰총장에게 올리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상명 총장의 고민의 폭은 좀 더 넓어 보인다.

정 총장은 수사팀 내부 뿐 아니라 검찰 수뇌부의 견해와 경험 많은 원로급 검찰 간부들의 조언도 듣고 있고 법조계 외에 산업계와 언론계 등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고 최종 판단 전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강경한 사법처리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구속돼도 현대차가 흔들리지 않고 ▲원칙적인 사법처리가 기업 투명화에 도움이 되며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한 시대적 필요가 크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반면 탄력적인 처리를 주문하는 쪽에서는 ▲유가급등과 환율불안 등 경기불안이 심하고 ▲현대차 처리가 협력업체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며 ▲수사의 궁극적 목적은 `기업인 죽이기'보다 `편법승계 차단'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사팀 입장에서는 주어진 임무대로 적법 절차에 따라 최선을 다해 증거를 찾고 취합된 증거를 토대로 판단 근거를 제시하면 되지만 총장으로선 좀 더 시야를 넓혀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온다.

현대차 그룹 내 정몽구 회장의 비중을 놓고 "SK 최태원 회장도 구속됐지만 SK는 오히려 좋아졌다"는 주장과 "손길승-최태원 투톱 체제였던 SK는 정몽구 회장 1인 경영 체제인 현대차와 다르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의 수사방향에 대해서는 "재벌 수사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검찰이 이번에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검찰이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기업을 잡는다면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냐"는 신중론도 나온다.

수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도 "장기적으로는 총수일가 엄벌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과 "외환위기 때도 펀더멘털은 탄탄했지만 비리 기업들이 잇따라 처벌되면서 금융기관 신인도가 하락했던 게 아니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만일 정 총장이 법논리에 충실하게 현대차 관계자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한다면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강수(强手)를 두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경제논리를 감안하고 편법 경영권승계 차단에 방점을 찍는다면 정몽구 회장보다는 2세인 정의선 사장을 구속하는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정 총장의 최종 결심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