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이 2일 오후 미국으로 돌연 출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망을 그룹 총수 일가로 좁혀가던 검찰이 크게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정 회장이 이달 말 있을 미국 조지아주의 기아차공장 착공식과 이달 27일로 예정된 `우드로 윌슨 국제센터상' 수상식 참석을 이유로 귀국을 미룰 경우 수사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정 회장의 정확한 출국 배경을 확인하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현대차측은 "정 회장이 1주일 일정의 방미 일정을 마친 후 입국할 예정이다"며 도피성 출국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검찰도 "출금 조치를 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에 나갈 수 있다. 일정을 마친 후 입국하지 않겠느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라며 태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의 출국과 무관하게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예정대로 수사해 나간다는 계획도 재확인했다. 이처럼 겉으로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혹시 귀국 일정을 넘겨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정 회장이 외국에서 입국을 계속 미룬다면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게 불을 보듯 뻔하고 그럴 경우 출금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 총수의 지시 없이는 비자금 조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정 회장이 입국을 마냥 미룬다면 검찰의 이번 현대차 비자금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 검찰 일각에서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현대차 비자금 수사가 정ㆍ관계 고위인사와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의 `검은 공생' 관계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정 회장의 출국은 김씨 로비 의혹 수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이 정 회장의 출국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정말 허를 찔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정 회장에 대해 입국을 종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검찰의 당혹스런 내부 기류를 전했다. 정 회장이 귀국을 늦춘다면 조기 입국을 종용하기 위해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 대한 출금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수사팀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요 사건 연루자의 입출국 사실이 법무부에 곧바로 통보되는 관행에 비춰 "정 회장이 검찰과 사전 협의도 없이 해외로 나갔을 리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사전조율을 했을 것이다"는 관측도 검찰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미리 협의를 했더라도 검찰이 이를 언론에 확인해준다면 `정 회장이 피내사자'라는 것을 대내외에 공식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사전조율 사실을 철저히 부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