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 활동은 정평이 나 있다.


도요타 캐논 같은 대기업들은 크고 작은 제안이 1년에 수십만 건씩 접수될 정도다.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라인 조정에서부터 물류시스템 개선,불량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까지 혁신의 노력은 끝이 없다.


일본식 경영을 철저히 거부해 온 교토 기업들도 끊임없이 혁신한다는 점에서 이들 기업과 비슷하다.



[ 사진 : 교토시 미나미구에 있는 엔진계측 장비 공장. 근로자들이 업무 진척도를 알 수 있도록 컬러 표시장치를 설치한게 특징이다. ]


하지만 기업 성격에 맞는 독특한 방식을 고집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분명히 다르다.


일본에서 전후 최초로 설립된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호리바제작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1위 분석계측장비 업체인 호리바제작소는 작업 시간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활동을 추구해왔다.


◆모든 업무 시간을 반으로 줄여라


1990년대 초반까지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장치를 주력 생산해 온 호리바제작소는 고객의 주문에 맞춰 생산해 온 탓에 생산 판매 관리가 느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92년 반도체 계측 장비쪽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다.


경기순환이 빠른 반도체 업체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생산하다 보니 개발 및 생산 사이클이 엄청나게 빨라진 것이다.


오늘 장비 구매계약을 맺고 내일 납품할 것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었다.


나가무라 가스미 비서실장은 "획기적인 혁신활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업이 위협받을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나온 게 '타임원하프'(Time One Half,절반으로 줄인다)라는 운동이다.


1시간에 하던 일을 30분에 하려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1994년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되면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두 배로 높아진다.


부서별로 기존의 업무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계획을 마련해야 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근로자들이 타성에 빠지고 혁신마인드는 흐려지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 '블랙잭 형사제도' 도입


호리바제작소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1998년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업무 개혁 및 생산성 향상에 대한 타성을 타파할 목적으로 사훈인 '재미있고 엉뚱하게'에 걸맞게 '블랙잭 형사제도'를 도입했다.


카드게임에서 착안한 것으로 블랙잭으로 21세기 승자가 되자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블랙잭 형사는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진바 데츠야 홍보부장은 "설계부문 인력의 업무를 약 1주일간 지켜봤더니 하루 8시간 중 설계와 직접 관련된 업무를 하는 시간은 2시간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고 상사와 얘기하고 다시 설계를 시작하는 과정을 분 단위로 체크해 실상을 수치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설계부문은 오전에는 설계만 주력하도록 집중타임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한 달 만에 업무 효율이 3배가량 높아졌다.


설계부문에서 리드 타임이 3분의 1로 줄었다.


당연히 제조쪽으로 넘어가는 시간도 단축됐다.


외주 생산의 경우 설계 과정을 외주회사에 실시간으로 알려줌으로써 납기를 혁신적으로 줄였다.


프린트 기판(칩 마운팅)의 경우 설계에서 제조까지 1주일 걸리던 게 하루로 당겨졌다.


◆해외 사업장에도 블랙잭 형사 파견


블랙잭 형사 제도가 거창한 것도 아니다.


전담부서에는 3명의 블랙잭 형사가 있다.


이들은 대상 부서를 선정하고 업무 추적에 들어간다.


블랙잭 형사는 새로운 발상으로 백지 상태에서 업무 분석을 할 수 있도록 6개월 마다 교체된다.


최근에는 독일 현지법인 경리과장을 불러들여 활동에 들어가도록 했다.


해외 사업장에도 이 제도를 적용하기 위해서다.


현재 호리바제작소는 국내외 44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진바 부장은 블랙잭 형사를 주축으로 한 '울트라 퀵 서플라이어 운동' 덕분에 "수년 째 1000명 수준의 종업원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1회계연도에 745억엔이던 매출이 2004회계연도에는 924억엔으로 증가했다.


교토=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