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잡아당긴 타구가 전진수비를 하던 일본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가르고 펜스까지 굴러갔다.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었다. `한국이 30년 동안 못 이기게 해주겠다'는 일본 선발타자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의 시건방진 말도 여전히 재미도 없는 코미디로 재확인됐고 한국에는 꿈같이만 느껴지던 4강이 갑자기 현실이 돼버렸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35.기아)이 일본을 한방에 격침하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공포의 구단으로 떠오른 한국의 주장으로서 포효했다. 이종범은 1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WBC 2라운드 마지막 3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0-0으로 맞선 8회초 1사 1, 3루에서 후지카와 규지의 4구째를 통타, 싹쓸이 안타를 뿜었다. 이종범은 3루 주자 김민재가 홈을 밟고 1루 주자 이병규까지 홈으로 쇄도하는 것을 지켜보며 계속 내달렸지만 아쉽게 3루에서 태그 아웃됐다. 그러나 영광 뿐인 '아웃'. 이종범은 대표팀 소집 때부터 `군기 반장'을 자임하며 정신적인 리더로 활약해왔다. 1라운드 한일전과 2라운드 미국전 등 고비가 있을 때마다 후배 선수들을 다독여 극적인 결과를 엮어냈다.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전을 앞두고 터진 `30년 발언'을 두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우리 팀에만 집중하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미국전에서는 "미국 선수들의 볼이 빠르다고 하나 결국 인간이 던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인간이 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기염을 토했다. 김인식 한국 감독은 "처음에 해외파 선수들이 늦게 합류해 팀워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주장 이종범이 선수들을 잘 다독거려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선수들이 묵묵히 제 몫을 해줘 지금까지 경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경기장 밖에서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도 이승엽과 함께 타격감이 가장 좋아 지금까지 늘 공격의 선봉에 섰다. 지난 5일 1라운드에 한일전에서도 이종범은 `도쿄대첩'의 중심에 있었다. 가볍게 안타를 치고 나가 이승엽의 홈런 때 홈을 밟으면서 야구 역사가 약 40년 앞선 앞선 일본에 씻을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겼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미국을 꺾은 14일 역사적인 날에는 이종범의 방망이가 투혼으로 빛났다. 감기로 인한 목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안타로 진루해 이승엽의 홈런 때 홈을 밟는 등 4타수 2안타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이날 경기까지 이종범의 6경기 성적은 타율은 0.429(21타수 9안타)에 출루율 0.550. 공격의 첨병으로서 어느 빅리거 못지 않은 눈부신 활약이었다. 기술과 정신력에서 이처럼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주장 이종범이 있는 한 WBC 초대 챔피언도 먼 얘기가 아닌 듯 하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jang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