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는 상당수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당초 정부가 추진했던 파견근로 업종 확대 등 고용시장 유연성 부분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삭제되거나 축소돼 당초 기대됐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바랄수 없게 됐고 기업들의 인력 운영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까지 노동계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함에 따라 노무현 정권은 겉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외치고 있지만 노동정책은 확실한 철학과 방향없이 정치적 타협주의로 흐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에 초점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안의 곳곳에는 노동계의 주장이 담겨져 있다.비정규직 사용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정규직과의 차별 철폐에 초점을 맞춰 고용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여야는 이날 그동안 최대 쟁점인 기간제근로자(계약직)에 대해 사유 제한 없이 2년을 사용한뒤 이 기간이 지나면 무기근로계약자로 간주하기로 했다.당초 민주노총은 계약직을 쓸 때 질병 출산 휴가 등으로 사유를 제한하자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환노위 의원들은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나라는 선진국에서도 찾기 힘들고 우리 경제현실에도 맞지 않다는 평가에 따라 수용하지 않았다.실제로 프랑스등 일부 국가만 기간제 사용사유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미국 일본 영국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차별을 받았을때 노동위원회에 누가 청구할수 있는냐는 문제와 관련,법안은 근로자가 직접 청구하도록 명문화했다.하지만 차별이 아님을 입증하도록 하는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한 것은 차별구제신청의 남발을 부추길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파견근로 대상 업종의 전면 허용은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로 지난해 4월 당정협의에서 무산됐고 현행(26개 업종 허용) 포지티브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파견기간은 2년으로 하고 불법파견으로 판정되거나 사용기한을 초과하면 사용자가 직접 고용토록 하는 고용의무제를 도입했다.노동계는 파견기간 2년이 넘을 경우 고용으로 간주하는 고용의제를 주장해왔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요구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법안이라는 점을 감안,차별대우금지라는 포괄적 단어로 대체됐다.현재 이 조항을 법에 명시한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하며 대부분의 나라는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있다. ◆실업문제 악화 우려 당초 정부가 비정규직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만해도 입법 목표는 고용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의 확보였지만 노동계의 주장에 떠밀린 정치권의 개악으로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노동유연성을 확대하려는 대목이 결국 빠짐에 따라 일자리가 축소되면서 실업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파견범위 확대가 좌절됨에 따라 제조업 현장에서의 하청업체 근로자 사용이 불법파견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아 곳곳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많은 대기업들은 보호수준이 높아진 비정규직 채용을 줄임으로써 당장 일자리 축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국가 전체적으로도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비정규직 보호에만 중점을 둬 기업인력 운용에 심각한 제한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경총은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법안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것으로 실업률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노동계 역시 자신들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거세게 반발했다.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차별철폐조항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개악안으로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며 “개악안을 철폐하기 위해 총파업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한국노총도 “불법파견 적발시 ‘고용의제’를 요구했으나 ‘고용의무’로 바꾼 것은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특히 민주노동당이 무책임하게 원론만 주장해 파행적으로 법안처리가 됐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