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메드 풍자만화 사건을 둘러싼 덴마크와 무슬림간의 갈등이 서유럽과 아랍권의 정면충돌로 확산되면서 전 유럽이 들끓고 있다. 유럽 각 국의 공관들이 격분한 시위대에 의해 연일 피습을 받고 있으며,이란은 덴마크와의 교역중단을 선언하는 등 경제전쟁으로 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파키스탄 시위대가 현지의 국내기업이 운영하는 버스터미널에 불을 질러 30억원대의 피해가 발생하는 등 한국으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한국경제신문은 15일 현지국 주재 한국대사들과 긴급 좌담회를 열고 이번 사건의 원인과 한국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했다. ◆사회=이번 사건을 놓고 아랍과 서구의 문명충돌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신연성 주 요르단 대사=지난달 요르단 대학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을 요르단인이라기보다 아랍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르단이라는 국가보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규범과 이에 따른 사회적 관습,언어적 동질성에 더 큰 귀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일체감은 국가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죠. ◆김주석 주 파키스탄 대사=이슬람 종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슬림은 종교 창시자인 모하메드를 하나의 상징이나 그림,형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무슬림은 신이라고 해도 우상화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건은 무슬림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죠.이는 언론 자유를 넘어섰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주철기 주 프랑스 대사=문화적 편견도 한 원인입니다. 현재 유럽연합(EU) 내에는 1500만명에 달하는 무슬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우익적 성향의 매체에 의해 마호메트 풍자만화로 표출된 것으로 봐야겠지요. 프랑스와 EU 내 지식인들은 서구세계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를 나무라면서도 일부 아랍국가들이 원리주의에 편승해 이번 사건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개인적으로 이번 아랍과 서유럽의 충돌은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프랑스 등의 경우 미국에 비해 외부 문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포용적이고 이슬람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이를 비교적 잘 융화시켜오지 않았나요? ◆신 대사=유럽은 중동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해왔지만 경기침체와 EU의 확대에 따른 실업률 상승 등으로 사회적 불만이 쌓여왔습니다. 특히 일자리 상실을 아랍계 등 해외 이주민 탓으로 돌리려는 보수주의적 경향이 분명 있습니다. 이런 내부 갈등이 우경화 요소와 결합되고 여기에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 편견이 겹치면서 폭발성이 강해진 것입니다. ◆사회=이번 사태가 사무엘 헌팅턴이 예견한 서구와 이슬람 간 문명충돌의 시작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주 대사=그렇게까지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물론 팔레스타인이라는 근본 문제가 남아있지만 유럽과 아랍 세계는 이미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얽혀있습니다. 오일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프랑스에서만 인구의 10%가 무슬림입니다. 이들이 없는 유럽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장기적으론 이번 사건이 양측의 이해폭을 넓히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 대사=오히려 1990년 중반 이후 일부에서 현실 정치문제를 문명의 충돌로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양측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수의 유럽인들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지중해권 국가들은 물론 중동을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대사=이슬람쪽에서도 수세기에 걸친 갈등의 교훈으로 '이제는 양 문명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의 인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주 대사=유럽과 중동국가 간에는 외무장관,경제각료회의 등 각종 외교채널이 이미 정례화돼 있습니다. 또 터키가 EU에 가입될 경우 6700만명의 회교도가 새로 유럽에 유입되는 효과를 낳습니다. ◆사회=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문제와 혼혈인에 대한 편견 등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는데 FTA(자유무역협정) 확대 등 세계화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유럽과 중동의 경험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신 대사=우리와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합니다. 한국의 경우 이스라엘 성지순례 인구만 연간 3만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반드시 중동을 거치게 됩니다. 성지가 있는 중동을 배우고 이해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 대사=이슬람 전문가가 절대 부족합니다. 관련 학회에 참가하는 학자들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문화적 다양성과 외부 문화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를 강조하고 이를 교육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이라크 파병 등으로 한국을 미국과 겹쳐 생각하는지,아랍사회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습니다. 이번 파키스탄 시위대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김 대사=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사건은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상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삼미대우의 인기는 상당히 높습니다. 현지 로컬항공과 경쟁할 정도로 서비스 고급화를 이뤄내면서 승객운송문화를 바꿨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우호적입니다. 이라크 파병에 따른 반한 감정도 일반인들 사이에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한국이 중동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취해야 할 정책으로는 어떤 게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의 공적개발원조(ODA)나 민간기구(NGO)의 활동은 이웃 일본 등에 비해 미흡하지 않습니까? ◆신 대사=지난해 우리정부의 대중동 ODA 실적은 8100만달러에 달합니다. 2002년에는 135만달러에 불과했습니다만 비약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무상지원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랍인들은 스스로를 서구인들과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지나친 선심은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습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김 대사=파키스탄에도 현재 2000만달러 규모의 ODA자금을 지원해 송전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NGO들의 지진피해복구 노력도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20여개 단체에서 500명 가까운 자원봉사 인력들이 피해복구와 급식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입니다. 정리=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