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7일 개정 공정거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취하할 뜻을 밝힘에 따라 금융보험 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공정법 조항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은 이뤄지지 않게 됐다. ◇헌소 취하 결정 배경 삼성이 사회복지금 헌납, 사회공헌 확대 등과 함께 공정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취하하기로 결정한 배경으로는 삼성에 대한 여론 악화가 결정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은 그동안 대선자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X-파일, 삼성차 손실 보존,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 등과 관련해 부도덕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정부와의 관계도 편치 않았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삼성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에 대한 십자포화가 이뤄져 삼성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정부와의 관계 개선 등을 위해 공정법에 대한 헌소를 취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삼성은 `반삼성' 기류가 확산되자 결국 사회 공헌 및 계열사 독립 경영 강화와 함께 공정법 헌소 등 자신과 관련된 소송을 취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헌소 대상 조항은 삼성이 헌소를 제기한 개정 공정법의 핵심 조항은 대기업집단 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허용범위를 종전의 30%에서 올 4월1일부터 매년 5%포인트씩 줄여 2008년 4월1일까지 15%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해 6월28일 헌소를 제기할 당시 "개정 공정법이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을 침해하고 평등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고 금융계열사 보유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되면 그룹의 간판인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전자의 지분구조는 2004년 말 현재 자사주를 차감한 보통주 기준으로 삼성생명 7.99%, 삼성물산 4.43%, 삼성화재 1.39%, 이건희 회장 1.91% 등 삼성 특수관계 인 지분은 17.72%에 불과한 반면 외국인 지분은 54.13%에 달한다. 따라서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의결권이 계속 낮아지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이날 헌소 취하 등에 따른 경영권 방어 대책과 관련, "똑 떨어진 방안을 찾지 못했지만 경영을 잘해서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을 최선의 방어책으로 생각한다"며 "경영권 위협을 초래할 불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계속 연구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공정위 반응 및 재벌 정책 전망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헌소 철회 결정에 대해 부담을 덜었다는 분위기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7일 언론사 경제부장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삼성이 헌법소원을 취하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공정위 입장으로서는 부담을 줄이고 분쟁에 소요되는 시간도 줄이게 됐다"면서 "헌법소원에서 삼성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삼성에는 유리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또 삼성의 개혁방안과 관련 "삼성이 주가급등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어렵다면 산업.업종별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의 다른 관계자도 "삼성의 헌소가 기각이나 각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개정 공정법 집행에 부담이 있었다"며 "하지만 삼성이 취하하면 개정 공정법에 대한 논란은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의 헌소 취하는 개정 공정법이 기업의 경영권에 큰 위협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될 수 있다"며 "삼성이 주주 중시 경영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삼성이 개정 공정법에 대한 헌소와 함께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대해서도 수용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부의 재벌 정책 강도와 방향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 재계 입장을 대변해왔던 삼성이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만큼 정부의 재벌 개혁 정책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두산, 삼성 등 대기업들이 투명 경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재벌 정책의 강도를 높이기 보다는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