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나섰던 주민이 묻어둔 보리쌀이 55년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대전시 중구 정생동에 사는 강희길(60)씨는 지난해 6월 무너진 담을 고치려고 굴착기를 동원해 마당 정지작업을 벌이다 땅속에서 묵직한 드럼통을 발견했다.


굴착기 기사가 "묵직한 게 걸렸다"며 땅속 1m 깊이에 묻혀있던 드럼통을 들어내자 갈라진 틈새로 보리쌀이 솔솔 새어나왔던 것.

강씨는 이같은 드럼통을 3개나 발견했고 비록 드럼통 자체는 검붉게 녹슬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잘 보존된 보리쌀이 가득 들어 있었다.


15년 전부터 이 집에서 살았던 강씨는 "평소 동네 주민들이 `이 집에 보물이 묻혀 있으니 잘 찾아보라'는 말을 종종 했지만 농담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리쌀이 든 드럼통이 나오자 강씨는 뭔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땅을 팠고 또다시 어른 키 만한 장독이 나왔다.


강씨는 "애초 이 집의 주인이 한국전쟁이 나자 피난을 가면서 보리쌀과 함께 미숫가루와 약간의 돈을 장독에 담아 묻어 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장독안에는 이미 물이 들어차 돈이나 미숫가루는 모두 썩어버렸다"고 전했다.


찾아낸 드럼통을 집안에 보관해오던 강씨는 계절이 지나면서 두 통의 보리쌀이 썩어버리자 올 1월 남은 한통 속에 있던 보리쌀을 꺼내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눠줬다.


강씨는 "소문을 들은 동네 주민들이 당뇨에 좋을 것 같다며 자꾸 달라고 하기에 한 됫박씩 퍼줬다"며 "말끔히 밀봉된 드럼통을 보니 당시 주인이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상상이 간다"고 말했다.


(대전=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kb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