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더러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내겠지만 그것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효과적 방법일까요." 지난 18일 밤 방송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이 재계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경련을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들은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에 공감한다"는 내용의 상투적인 환영 논평을 내놓았지만 일선 기업들의 반응은 대체로 썰렁하고 냉소적이었다. 양극화 해결을 위한 재원마련 대책으로 세수확대가 부각되면서 정책의 방향이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4대그룹 계열사의 한 CFO(재무담당 최고경영자)는 "양극화는 완화돼야 하지만 그 방식은 건설적이어야 한다"며 "부담을 더 지는 사람(기업)들의 동의나 양해를 구하지 못할 경우 투자나 근로의욕 저하로 경제 전반이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들은 또 지난해 국세청의 느닷없는 세무조사 확대를 떠올리며 "앞으로 세무당국의 압박이 더욱 세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당시 국세청은 세수를 늘리기 위한 인위적인 조사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 얘기를 액면 그대로 믿은 기업들은 별로 없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인지,대통령이 양극화 재원마련 필요성을 언급하자마자 국세청은 19일 116개 대기업에 대한 표본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업계에선 당장 "기업들을 쥐어짜기 위한 수순 아니냐"는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는 기업들의 이 같은 반응이 국가정책 전반에 대한 정보와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단지 세금 내는 돈이 아까워 정부의 양극화 해소 대책에 딴지를 건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오해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투자의욕을 꺾는 규제와 반기업정서,여기에 당국의 고압적인 태도에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이를 끝내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세금이 적은 곳으로 생산·판매기지를 옮기거나 불용자산에 수익을 묻어 일부 노동계의 표현대로 '세상이 바뀌는 날'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조일훈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