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뒷굽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정복을 노리는 알렉산더의 군대는 전쟁터를 전전하며 밤낮을 전진해야 했는데,행군속도는 곧 점령지역과 비례했던 까닭이다. 당시 신발 밑창의 뒷굽을 약간 높였더니 걸음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구두 굽이 장착된 것은 근세 이후로 가죽바닥의 손상을 방지하거나,키가 커보이기 위해서였다. 승마용 장화에는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굽을 달았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구두 뒷굽에 대한 인상이 각별하다. 아직도 닳아 빠진 뒷굽을 보면 근면함과 절약정신의 상징처럼 여기곤 한다. 이런 점에서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정 명예회장은 허름한 양복,그리고 가식없는 말투와 함께 뒷굽이 다 닳은 구두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근대화 시절 현장을 누비고 다닌 최고 경영자들은 그 특유의 부지런함이 구두와 연관되어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러나 요즘은 구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 같다. 일본 이미지 컨설팅업체인 '임프레션'의 스가와라 아케미 사장은 "구두 굽이 마모된 모습은 '활동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느낌을 주기 보다는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성격이 거친 사람'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줄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능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구두 뒷굽부터 신경을 쓰라는 얘기다. 사실 구두라는 신발은 한사람의 활동을 보여주는 증인이기도 하다. 걷기 시작해서부터 혼자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신발을 신고 다니니 개인의 역사라 할 만하다. 이력서의 이(履)자가 신발을 뜻하는 것만 봐도 수긍이 간다. 이제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그 사람의 성향과 감각을 맘껏 드러내 주는 표현의 도구로 등장한 셈이다. 뒷굽이 반듯하고 광택이 나는 구두로 자신의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것도 좋을 성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