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야근을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선배들은 무슨 일이라도 붙잡고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맘이 편한가 봐요. 우린 그 시간에 헬스클럽에서 몸관리를 하거나 중국어를 익히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 마케팅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영기씨(30)는 저녁 7시면 어김없이 명동 헬스클럽에서 1시간을 뛰고 8시부터 9시까진 중국어 회화를 배운다. 김씨 같은 2635세대는 일찍 철이 든 세대다. 이 세대의 맏형뻘인 30대 초반들은 유복한 성장기를 보내고 사회진출기에 외환위기와 '청년실업대란'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갑자기 맞닥뜨리면서 혹독한 사회초년병 신고식을 치렀다. 이들은 '삼성맨' '현대맨'으로 불리면서 '평생직장=평생직업' 자부심에 가득찼던 아버지와 삼촌들이 추풍낙엽처럼 회사에서 떨려나는 것을 목격했다. 이들은 "조직이 위기에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관리를 잘해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고 되뇐다. 이 덕분에 취업준비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시장 규모가 최소 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권업 계명대 교수는 "6·25동란기 피난세대가 생활력이 강하듯이 외환위기라는 경제동란을 겪은 2635세대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의 사회관을 체득했다"면서 "이들은 회사든,관료든 조직은 위선적이고 위기엔 무력하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충성보단 오로지 나 자신만 믿는 영화 배트맨의 주인공 같은 존재들"이라고 진단했다. 개발연대에서 시작해 386세대까지 이어졌던 '회사형' 인간들이 퇴조하고 커리어 지상주의자들이 직장을 메우고 있다. '언제든지 정리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에 2635들은 양갈래로 대응한다. 한 부류는 '샐러던트(Salaried man + Student)'다. 이들은 '실력만 있으면 위기 상황이 발생해도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끊임없이 실무역량을 기른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학원에서 배우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며 스스로의 업무능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나머지 한 흐름은 일찌감치 내 사업을 하는 게 속 편하고 비전도 월급쟁이보다 낫다고 보는 '자영업 독립파'다. JP모건에 근무하는 이모씨(29)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됐지만 요즘도 퇴근 이후와 휴일에는 모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2003년 4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국내 굴지의 삼일회계법인에 입사,주변의 부러움을 샀지만 이씨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자기계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틈틈이 공부를 한 이씨는 1년 뒤엔 세계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JP모건의 서울지사에 들어갔다. 이미 연봉 1억원에 가까운 고소득자가 됐지만 이씨는 JP모건 입사 후에도 CFA(미국 재무분석사) 시험을 준비해 지난해 6월 2차시험까지 합격,올해 최종 시험만을 남겨놓고 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학 경영학과를 나온 이영태씨(29)는 지도교수가 추천해준 은행에 가지 않고 모 외국계 패밀리레스토랑 체인에 입사했다. 그는 삼계탕을 체인점으로 키우는 게 필생의 꿈이다. "대학시절 TGI에서부터 베니건스 등 즐비한 외국계 레스토랑 체인들 틈새에서 오로지 '전통의 맛' 하나로 승부하는 토종음식점을 보면서 토종프랜차이즈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금융권 추천을 거절했습니다. 역시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그룹 모 계열사의 입사 4년차인 채모씨도 앞으로 3년만 더 다니고 독립한다는 분명한 스케줄을 짜놓았다. "당초 입사할 때부터 삼성은 내 사업을 위해 일을 배우는 실습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직장이지만 역시 내 꿈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고 삼성이 내 인생을 끝까지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사업계획은 차츰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이들 처럼 목표가 선명한 이들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심리의 중압감으로 인해 무턱대고 습관적으로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묻지마 자기투자족'들도 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635세대의 이 같은 특징에 대해 "IMF위기를 통해 일찍부터 세상의 불확실성을 경험했지만 선배인 386세대와 달리 뭔가 뚜렷한 목표에 인생을 걸어본 적이 없어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의 황성길 컨설팅본부장은 "2635세대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토익점수 학위 자격증 등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송형석·유승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