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26일 전원위원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키로 하고 현행 병역의 의무와 조화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국회의장 등에게 권고해 큰 파장이 일 전망이다. 헌법상 병역의 의무는 분단현실에 처한 한국사회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던 만큼 이를 사회봉사와 같은 다른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불경'스러운 일로까지 인식돼 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부담을 무릅쓰고 인권위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전향적으로 인정한 것은 국방이라는 전체적 가치보다 개인의 양심이라는 인간 존엄성의 절대성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5월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종교적 이유로 징집을 거부한 피고인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을 때 우리사회가 몸살을 겪었던 경험에서 보듯 대체복무제는 법리적 충돌 뿐 아니라 계층ㆍ성별ㆍ보혁 간 갈등까지 불러일으키는 문제다. 인권위도 이런 저항을 의식해 2001년 출범 직후 평화주의자 오태양씨,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병역거부를 한 성우 양지운씨 아들의 진정 접수를 시작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계속해왔다. 인권위는 2002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실태조사를 벌였고 올해 10월 병무청, 국방부 관계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를 모아 청문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출범 이후 4년에 걸친 의견 수렴 결과 우리 사회에서도 병역에 있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인권에 대한 인식이 국가기관이 공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무르익었다는 의미다. 이날 인권위의 결정은 헌법의 구체적인 명문과 관련법의 제ㆍ개정 절차가 남아있지만 일부 진보진영의 주장에 그쳤던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번 인정으로 분단상황에서 국가의 안보가 개인 인권보호의 기본 전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최상위법인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하위법인 병역법에 의율(擬律ㆍ법원이 법규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것), 인신이 구속되고 범법자가 되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병역자원 감소에 따른 병력 확보 문제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공정히 판명할 만한 기관의 설치와 운영, 대체복무제의 구체적 방법론이 과제로 남은 데다 보수진영을 축으로 한 기성세대의 반발도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이미 대법원이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뒤집을 사법부의 새로운 판단도 남아 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에 따르면 12월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돼 있는 거부자는 1천186명으로 매년 600명 정도가 1년6개월의 실형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