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축구대회 E∼H조 1위 후보는 각조 톱 시드국인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스페인이 꼽힌다. 그러나 16강에 진출할 8개 팀까지 함께 점쳐보라면 쉽지 않은 문제가 된다. E조에는 미국과 체코가 예측하기 힘든 일전을 벌일 것으로 보이고 F조는 최강 브라질을 뺀 크로아티아, 호주, 일본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한국은 스위스와 조 2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되고 가장 약한 그룹이라는 H조는 스페인과 우크라이나가 상대적 우위를 점하지만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절대 강세는 아니다. ◇E조(이탈리아.가나. 미국.체코) B조(잉글랜드.스웨덴.파라과이.트리니다드토바고), C조(아르헨티나.네덜란드.코트디부아르.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함께 넓게 보면 '죽음의 조' 범주에 드는 편성이다. FIFA 랭킹은 이탈리아가 12위인 반면 체코가 2위, 미국이 6위다. 가나는 한참 처진 50위. 랭킹 만으로 따져보면 어느 팀이 16강 티켓을 거머쥘 지 안갯속이다. 체코-이탈리아전(6월22일 23시.함부르크)은 C조 아르헨티나-네덜란드전과 함께 조별리그 양대 빅 매치로 꼽힌다. 두 팀은 상대전적에서 2승1무2패로 팽팽하다. 1934년과 1990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가 모두 이겼지만 이후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와 두 차례 친선경기에서는 체코가 2승1무로 앞섰다. 작년 2월 팔레르모(이탈리아)에서 가진 평가전에서는 2-2로 비겼다. 이탈리아는 수비진과 미드필더 진용은 알레산드로 네스타, 프란체스코 토티 등 기존 멤버들이 그대로 나오지만 스트라이커들은 '굶주린 늑대' 루카 토니와 알베르토 질라르디노로 얼굴을 확 바꿨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보다 막강 화력이 더 믿을만하다는 게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자랑이다. 이탈리아는 16강 진출은 당연하고 8강이면 평년작, 4강 이상은 올라가야 낯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1934년 월드컵에서 미국을 7-1로 대파했지만 그 이후에는 이겨도 한 골차 승부였다. 체코는 노르웨이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힘겹게 본선에 올라왔지만 전력으로 보면 4강권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카렐 브뤼크너 감독은 8강을 현실적인 목표로 잡고 있다. 체코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미국에 5-1 대승을 거둔 적이 있어 자신감에 넘친다. 체코는 대표팀에서 은퇴한 파벨 네드베드가 위기 상황에서 백의종군했는데 지금은 그를 대신할 리더가 절실하다. 미국의 브루스 어리나 감독은 E조가 죽음의 조는 아니라며 여유있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체코(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미국이 같은 조였다는 점이다. 세 팀은 16년 만에 재회한 셈이다. 당시에는 이탈리아와 체코가 2회전에 올랐고 미국은 보따리를 쌌다. 첼시의 허리 미셸 에시앙이 이끄는 가나는 재능있고 강인한 미드필더진이 강점이다. 결코 쉽게 볼 팀은 아니다. ◇F조(브라질.크로아티아.호주.일본) 브라질의 16강 진출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월드컵 5회 챔피언 브라질은 조별리그를 통과하느냐보다 어떤 환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느냐가 더 관심을 끈다. 호나우디뉴, 호나우두, 카카, 아드리아누, 호비뉴로 짜인 공격진은 누구를 벤치에 앉혀야 할 지 카를루스 파레이라 감독이 두통을 앓아야 할 정도다. 브라질-일본전(6월23일 새벽 4시.도르트문트)은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지코 일본 감독의 조국이고 브라질과 일본이 지난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2로 비겼다는 점도 그렇다. 일본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지만 조 편성도 좋았고 안방이라는 이점도 있었다. 이번 조 추첨식에서 지코 감독은 브라질과 같은 조에 들어가자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FIFA 랭킹은 브라질 1위, 일본 15위, 크로아티아 20위, 호주 49위다. 그러나 랭킹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거스 히딩크 호주 감독은 F조 전체 판도의 변수가 되기에 충분하다. 히딩크 감독은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 감독을 겸임하면서 '투 잡'을 영위하고 있지만 양쪽에서 모두 경이적인 성적표를 냈다. 약체 전력으로 평가되던 에인트호벤을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올려놓았고 호주에는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이라는 한을 풀게 했다. 히딩크의 마법이 독일 땅에서도 계속될 지가 F조의 관전 포인트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지휘봉을 잡고 있던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준결승)과 크로아티아(3.4위전)에 모두 졌다. 이번에 설욕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호주는 2001년 한국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브라질을 1-0으로 이긴 적도 있다. ◇G조(프랑스.스위스.한국.토고) 4년 전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팀이었다.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레블뢰' 군단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상암에서 세네갈에 일격을 얻어맞으면서 프랑스의 운명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이번에도 아프리카 첫 출전국 토고를 만난 게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토고가 아프리카 예선에서 세네갈을 따돌리고 본선에 올라온 팀이라 레이몽 도메네쉬 프랑스 감독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스위스, 아일랜드, 이스라엘 등과 한조가 된 유럽 예선에서 한때 조 4위로 밀리는 수모를 당하다 5승5무로 간신히 1위를 차지했다. 지단과 릴리앙 튀랑, 비상테 리자라쥐 등이 주축이 된 1998년 우승 멤버들은 노쇠했고 이후 세대인 플로랑 말루다, 지브릴 시세, 파트리스 에브라 등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G조에서 1위는 역시 프랑스가 가장 유력하다. 2위는 한국과 스위스가 다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스위스는 FIFA 랭킹 36위로 한국보다 처지지만 메이저 대회마다 늘 복병으로 자리잡아왔다. 프랑스와 스위스는 유럽 예선에서 두 번 모두 비겼다. 상대전적은 프랑스가 3승2무2패로 박빙의 우위. 1986년과 1992년에는 스위스가 프랑스를 꺾은 적이 있다. 스위스와 토고의 주요 선수들이 프랑스 리그1(르 샹피오나)에서 많이 활약한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서로를 잘 알고 그만큼 서로에게 어려운 경기가 될 수 있다. 골닷컴은 예상 순위로 1위 프랑스, 2위 스위스, 3위 한국, 4위 토고를 예상했다. 유럽 베팅업체들과 비슷한 전망이다. 토고는 프랑스, 한국, 스위스와 단 한번도 대결한 적이 없다.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은 의외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H조(스페인.우크라이나.튀니지.사우디아라비아) '무적함대' 스페인이 '득점기계' 안드리 셰브첸코(우크라이나)와 만난다는 게 H조의 관전 포인트라고 외신들은 평했다. FIFA 랭킹은 스페인이 6위, 우크라이나 40위, 튀니지 28위, 사우디아라비아 32위로 들쭉날쭉하다. 스페인-우크라이나전(6월14일 밤 10시)이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스페인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2-1로 이긴 적이 있다. 튀니지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비교적 색깔이 약한 편이다. 스페인은 늘 세계축구의 중심에 있었지만 '빅매치 징크스'에 시달려왔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1950년 4위를 한 게 최고 성적이다. 이번에는 8강의 벽을 넘어 타이틀 획득을 목표로 내걸었다. 튀니지는 2002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아프리카 5개팀 중 유일하게 다시 본선 무대에 나왔다. 뚜렷한 스타가 없지만 로제 르메르 감독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대륙선수권을 제패한 유일한 사령탑이다. 르메르 감독은 2002년 프랑스를 이끌고 방한했다. 튀니지는 스페인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A매치 대결 전적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02한일월드컵에서 독일에 0-8로 대패한 충격을 잊고 싶어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던 자부심을 되찾겠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튀니지와 1승1패를 나눠가진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첫 출전국이지만 유럽 예선에서 가장 먼저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셰브첸코라는 걸출한 스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게 강점이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