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의 한 부분을 대담하게 클로즈업하거나 잘라낸 여성의 몸 일부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삽입하는 초현실주의적인 누드사진으로 유명한 빌 브란트(Bill Brandt. 1905-1983)의 사진 40점이 한꺼번에 공개된다. 으젠느 앗제를 교과서로 생각하고 초현실주의 사진의 거장 만 레이의 깊은 영향을 받은 브란트가 1930년대 초부터 1979년 말년까지 찍은 사진 중 찍은 해 또는 3년안에 바로 인화한 빈티지 프린트들이다. 종로구 관훈동 김영섭 화랑이 으젠느 앗제, 만 레이, 로버트 프랭크,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전에 이어 마련한 20세기 위대한 사진가 특별전 시리즈의 하나다. 25일부터 시작되는 전시에서는 특히 브란트가 40대 중반에 실험적인 초광각렌즈로 원근이 왜곡되고 디테일에 집중하거나 여성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 찍어 브란트 사진의 정수이자 누드 사진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 작품 20여점이 소개된다. 1905년(또는 190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독일에서 보낸 브란트는 만 레이의 스튜디오에서 1년간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만 레이와 동료 작가들의 초현실주의적 작품에 큰 감화를 받게 된다. 1930년에 파리 잡지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후 1931년 런던으로 돌아가 릴리풋, 하퍼스 바자, 뉴스 크로니클 등의 잡지사에서 사진 촬영을 계속하면서 대공황기의 영국 상황을 담은 사진들을 내놨다. 당시에는 사회상을 반영한 다큐멘터리 사진들이 전성기였지만 브란트는 현실을 포착하는 동시에 인간 내면이 강렬하게 반영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브란트는 중간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밝은 부분은 더 밝게,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둡게 해 강하고 극적인 흑백대비를 만들어내는 인화과정을 통해 단순히 초현실주의적 사진, 주관적인 사진의 영역을 넘어서 현대사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1961년의 걸작 사진집 '누드의 원근법'에 소개된 작품들과 1930년대에 찍은 다큐멘터리적인 작품들이 한꺼번에 전시돼 브란트 사진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변과 누워있는 귀를 접목시킨 1957년작 '이스트 서섹스 해변', 초현실주의적 프레임이 잘 드러난 1952년의 누드사진, 만찬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하녀차림의 남자와 여자 조수를 찍은 1936년 작품 등 눈에 익은 사진들이 많다. 전시기간은 내년 2월28일까지. ☎02-733-6331.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chae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