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김영세 대표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디자이너이자 CEO로서 주가가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관심이 아닙니다. 지난 19년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면서 한국에 약 150번 정도 왔는데 매번 2~3회씩 기업체의 디자인 컨설팅이나 강연회를 다녔습니다. 경영자들과 사회 오피니언리더들에게 '디자인의 힘'을 전도해왔고 이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국내의 히트 상품 뒤에는 김 대표가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자신의 성공작을 꼽는다면. "(웃으며)당연히 아이들입니다(그는 1남1녀를 두고 있다).많은 디자인들이 만족스럽습니다. 베스트를 꼽는 것보다 기억에 남는 디자인이라면 1990년에 내놓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여행용 골프가방 '프로테크'와 2004년 출시된 레인콤의 MP3플레이어 '아이리버 프리즘아이'와 'N10'입니다. 모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장거리 여행이 많다보니 일반 골프가방에 골프채를 넣어 다니면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고 들고 다니기도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바퀴를 달고 외형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봤지요(이 디자인은 훗날 미국업체 플램보에 팔렸다).9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차를 몰고 지나가다가 한 미국인이 이 골프가방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창문을 열고 '가방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다'는 대답이 즉각 돌아오더군요. 그는 내가 가방 디자이너인 것을 몰랐겠지만 그 사람의 만족스러운 표정은 제게 큰 기쁨을 줬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다수의 제품들은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상품'이나 미국의 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는 '산업디자인우수상', 유럽의 유명 디자인상인 'IF'와 '레드닷' 등을 수상했다.) ?최근 신발 화장품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새로운 도전은 늘 짜릿합니다. 최근 뚜껑을 열 필요가 없도록 겉면에 거울을 부착한 태평양의 화장품 케이스 '슬라이딩 팩트'와 뉴욕 거리의 모습을 20만분의 1로 축소해 신발에 그대로 옮겨놓은 E?R의 'NY컬렉션' 등 가방과 신발 화장품 펜 시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상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특히 'NY 컬렉션'은 뉴욕의 브로드웨이,허드슨,브루클린 등 도심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제품입니다. 이들 가운데 브루클린 모델에는 뉴욕 중심가에서 하늘을 바라본 건물의 모습을 담았지요. 이 제품은 10만원대의 고가인데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신발은 땅(도시)을 밟고 다니는 것입니다. 패션과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세계 제1의 도시 뉴욕을 첫 주제로 서울 런던 등 여러 도시를 시리즈로 제작할 생각입니다." ?훌륭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습니까. "언젠가 같은 질문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한 달 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니즈(needs)와 생활방식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평소에도 늘 관찰하고 순간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원동력입니다. 사실 디자인 로열티는 내게 영감을 준 수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디자이너이자 경영자로서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궁금합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어떤 상품의 외형을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입니다. 하나의 디자인이 훗날 그 제품을 생산한 기업의 매출에 엄청난 차이를 낳습니다.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몇 천억원이 되곤 하니까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큰 돈을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의 범위와 역할도 광범위합니다. 21세기 사람들은 디자인 때문에 무엇을 입기도 하고 사기도 합니다. 디자인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다고나 할까요. 그들의 삶이 디자인으로 인해 더 편리하고 윤택해지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업들은 진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9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에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이후 한국에 이어 지난해에는 베이징에도 사무실을 냈습니다. 중국에서의 디자인 사업은 어떻습니까. "중국 내 톱 20 안에 드는 기업 중 4개사가 현재 이노디자인과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 이름을 밝히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중국의 일류 대기업 총수들은 이미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20년 걸렸다면 그들은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겁니다." ?한국 기업과 디자이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한국의 디자인 혁신은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지난 20년간은 '디자인은 왜 중요하지' 등을 논의하고 갑론을박하던 시기였다고 봅니다. 한국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물론 일부 기업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인 평점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초의,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끊임없는 디자인 혁신이 소비자와 기업인, 정치인들 모두에게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글=문혜정·사진 허문찬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