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놓고 여야 간 정체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구상 중인 당의 새로운 좌표가 윤곽을 드러냈다. 핵심은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다. 여러 분야에서 시장원리를 수용하고 혁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도모하되 중산층과 서민의 복리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게 골자다. 시장경제를 토대로 고용과 복지를 늘리고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여 사회 양극화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사회 실현과 교육과 기회의 평등,지식기반형 중소기업 육성,지역주의 극복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대전제는 역시 통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의한 것이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내세운 '통합의 시대'와 맥을 같이한다. 우리나라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명실상부한 선진경제와 사회로 가려면 사회통합이라는 전제가 필수적이라는 여권의 일관된 상황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당이 새로운 좌표 설정을 서두르는 데는 당이 표방해온 '중도개혁' 노선이 주는 이념적 지향성이 선명하지 못한 데다 지지기반인 서민 중산층을 위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일 열린 신강령제정 공청회에서 '당의 정체성이 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참석자들은 "우리 당의 이미지가 도무지 어정쩡해 보수층은 한나라당,진보층은 민주노동당에 기반을 뺏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고,김영춘 신강령기초위원장은 "당의 강령과 정책이 그전 정당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문제점을 시인했다. 이 같은 자성과 비판론 속에서 등장한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라는 좌표도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당내 진보세력은 "한나라당과 차별화가 안 된다"며 보다 강한 진보 색채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일부 온건파는 "자칫 좌파로 비쳐질 수 있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노선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가 없지 않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쪽에 가까운 '공동체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여당의 노선을 좌파정책이라고 공격할 태세여서 또다시 여야 간에 성장 분배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