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빈 검찰총장이 14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 끝내 사의를 표명한 것은 검찰의 중립성 확보라는 검찰의 가치 수호를 위해서는 용퇴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총장의 용퇴 결정은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적법하긴 하나 부당하다는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검찰 내부의 진통이 계속될지, 천 장관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검찰조직 위한 용퇴 = 김 총장의 사퇴는 `외풍'을 막아야할 검찰 조직의 수장으로서 일선의 수사 담당 검사가 낸 의견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책임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사의표명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신병처리 문제를 놓고 일선 검찰의 의견을 지키기 위해 천 장관과 갈등을 빚다가 생긴 일이어서 자신의 잘못으로 불명예 중도 퇴임한 여타 총장과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히려 명예를 택한 쪽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의 뜻을 지켜주려던 김 총장이 정작 파문이 불거진 후 검찰 중간 간부나 평검사들의 용퇴 압력을 받았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 내 강경론은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검찰내 최고가치 중 하나인 `정치적 중립'이 훼손됐고 이를 지키려면 상징적 자리인 `검찰총장'이 결단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면 후배검사들의 요구를 탓할 일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시킨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였다는 점도 용퇴를 결심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천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가 절차는 물론 내용상으로도 위법하거나 명백하게 불합리하다고 볼 순 없다는 이견도 만만찮지만 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 발동 사태가 발생한 것은 총장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음에 틀림없다. 김 총장은 입장표명 자료에서도 "이번 지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심히 유감이다. 지휘권 발동이 정당한지는 국민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해선 안된다고 엄중 경고하면서 여론도 검찰의 입장을 지지할 것임을 강조했다. ◇ 입지 좁아진 법무장관 = 일각에서는 천 장관이 이전에도 사건 처리 문제로 김 총장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고 그 때마다 총장이 서면으로 지휘하라고 버텼다는 검찰 관계자의 전언을 감안하면 이번 사의표명은 예견됐던 일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법무부 간부들도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끝까지 만류했고 실제로 발동될 줄 몰랐다는 또다른 검찰 관계자의 말에 비춰볼 때 김 총장 역시 지휘권 발동사실을 알고 적잖이 당혹스러워했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김 총장은 수사지휘권 발동 직후부터 이번 파문이 단순히 강 교수에 대한 신병처리상 이견이 아닌 장관과 총장간 수사지휘권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을 예상한 듯 사퇴를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고위 간부들은 가능한 경우의 수 중에 검찰의 자체수사 후 신병처리 여부라는 카드까지 고언했지만 결국 후배검사들의 용퇴 압력과 자신이 입은 명예심의 상처는 용퇴를 택하도록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천 장관 본인은 검찰권에 대한 권력의 개입이 아닌 법률상 규정된 지휘권을 발동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김 총장의 사의표명은 이번 지휘권 발동이 검찰권을 훼손시킨 것이라는 일선 검찰의 시각을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수사지휘권 발동을 맹렬히 비판했던 검찰 내 강경론자들이 김 총장의 사의표명과 맞물려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경우 검찰이 내홍을 겪거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김 총장의 사퇴로 인해 한나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 위협을 받고 있는 천 장관의 입지가 한층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 지휘 수용 배경 = 하지만 김 총장이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한 것은 입장 표명에서 언급한 것처럼 천 장관의 지휘를 타당하진 않지만 지휘를 거부할 만큼 위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의 경우 신병처리 문제를 놓고 검찰 내에서조차 일부 이견이 존재하고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논란의 소지가 있어 장관의 지휘를 거부할 여지가 적었다는 명분론의 한계도 작용했다. 실제로 대검 간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조선의옥(造船疑獄)'(조선업계가 정치권에 뇌물 뿌림) 사건처럼 불합리한 수사지휘가 명백하다면 총장직을 걸고서라도 지휘를 거부하겠지만 이번 사안은 좀 애매하다"는 하소연이 나오기까지 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따른 김 총장의 퇴임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모든 책임을 천 장관에게만 떠넘기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를 일반 형사범과 달리 취급할 필요가 없고 형사소송법 원칙대로 증거 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을 경우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천 장관의 고언을 김 총장의 사의표명에 기대 쉽게 넘겨선 안된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