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이 당시 유력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인사의 대화내용을 도청한 자료가 최근 검찰에 압수된 사실이 새롭게 밝혀져 도청 범죄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올 7월 말 안기부 특수도청조직 미림의 팀장이었던 공운영(구속)씨 집에서 도청테이프 274개가 검찰에 압수된 적은 있으나 국정원에서 직접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청테이프가 확보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정치사찰 근절을 강력히 지시했음에도 국정원이 정치인들의 전화통화를 불법 감청(도청)하는 등 사실상 사찰행위를 계속했음을 추정케 하는 결정적 단서여서 정치권 등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이달 초 김대중 정부 당시 감청업무를 담당했던 국정원의 한 간부 집을 압수수색해 실세 정치인으로 추정되는 인사의 대화내용이 담긴 도청테이프를 확보했다. 검찰은 이 문제의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녹음된 대화가 법원의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감청된 전화통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잠정 결론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테이프가 음식점 등에서 도청장비를 이용해 정ㆍ재계 인사들의 대화를 직접 엿들었던 미림팀식 도청으로 제작된 것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테이프 등을 근거로 이달 중순께부터 국정원에서 감청을 맡았던 옛 `과학보안국' 전ㆍ현직 간부 및 직원 20여명을 잇따라 불러 정치인 등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불법 감청 실태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조사과정에서 국정원이 불법 감청을 했던 구체적인 사례들을 일부 확보했다"고 언급, 국정원이 정치인 등을 상대로 도청행위를 했다는 일부 사실을 확인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현재 국정원 간부 및 직원들을 상대로 누구의 지시로 정치인의 전화통화를 도청했는지, 도청한 통화내용을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등을 캐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또 도청테이프가 국정원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확인된 점에 비춰 도청테이프 녹취록이 제 3자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부분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국정원측도 도청테이프가 제작된 경위와 테이프가 직원의 집으로 유출된 경위 등을 자체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의 도청실태 조사를 일단락지은 뒤 다음달 초부터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과 원장을 지낸 인사들을 출석시켜 불법 감청의 책임소재를 가릴 계획이다. 법조팀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