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산업에 관해 얘기할 때 '도그 이어(dog year)'란 용어가 자주 거론된다. 사람의 1년이 개에겐 7년에 해당하고 IT업계의 1년은 우리가 생각하는 7년과 맞먹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IT업계는 '졸면 죽는다'고 말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방송과 통신의 융합' 기술은 IT업계 종사자들조차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다들 방송 수신기는 텔레비전이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휴대폰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위성DMB가 상용화됐다. 방송 프로그램은 전파를 통해서만 전송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깨지고 있다. 인터넷 기반의 TV(IP-TV)가 등장함에 따라 이젠 인터넷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게 됐다. 위성DMB나 IP-TV는 방송인지 통신인지 구분하기 힘든 융합 서비스다. 그러나 이 정도 융합은 시작에 불과하다. 연말께면 지상파DMB가 시작되고 내년 봄엔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넷이나 동영상을 즐기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이 상용화될 수 있다. 하나의 네트워크로 전화 인터넷 방송 등을 모두 이용하는 광대역통합망(BcN) 시범 서비스도 한창이다. 문제는 이런 서비스를 즐길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게 하려면 법제를 정비해야 하는데 관계부처와 관련업계의 이해가 엇갈려 되는 일이 없다. 통신을 관장하는 정통부와 방송을 관장하는 방송위는 수년 전부터 방통융합을 위한 법제정비 방안을 협의해 왔다. 그러나 양측은 아직까지 주도권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방통융합기구를 대통령 산하에 두느냐 총리실 산하에 두느냐를 놓고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방송학자들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방통융합에 관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얘기를 거리낌없이 하고 있었다. "IP-TV가 기존 방송과 경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느니 "세계적으로 방통융합 서비스로 성공한 전례가 없다"느니 "중장기적으로 통신을 방송에 통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란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융합 얘기가 나온 지 수년이 지난 지금 이 정도라면 할 말이 없다. 이젠 'IT 강국'이란 용어는 더 이상 써서는 안될 것 같다. '방통융합 혼란국'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지난주 방통융합 주무부서인 정통부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융합 부진을 강력히 질타했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통방융합 기구 설립은 우리나라 환경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느니 "방송위원회와 계속 대화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진 장관은 올해 초 토론회에서 "융합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도록 대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정책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리더십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방통융합이 늦어지면 휴대폰 디지털TV 등 디지털기기 수출에는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휴대폰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약 10%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방통융합에 '도그 이어'를 적용하면 융합이 2년만 지체돼도 우리는 14년 뒤지게 된다. 졸면 죽는 IT 세상에서 우린 너무 오래 졸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김광현 I T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