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저가 생산품이 세계적으로 넘쳐나면서 중국발 ‘하이퍼 디플레이션(hyper deflation·세계적인 저물가와 경기둔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이 최근 경기 회복 조짐에도 불구,물가상승률이 5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중국산 저가제품의 급속한 유입에 따른 ‘위장 물가 안정효과’때문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한은은 이에 따라 물가안정 목표범위(근원물가상승률 기준 2.5∼3.5%)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중국발 '하이퍼 디플레' 우려 현대경제연구원은 22일 '중국발 하이퍼 디플레이션 실현되나'란 보고서를 발표,"최근 중국 기업들은 과잉생산으로 재고가 급증하는 반면 내수시장의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돼 해외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올 들어 수출이 32%가량 증가하면서 1∼7월 중 무역수지 흑자액이 사상 최대규모인 503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흑자액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여파로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한국 등 주요 교역대상국으로의 '디플레 수출'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미국은 작년 4분기와 올 1분기 각각 0.6%이던 근원물가상승률이 2분기 들어서는 0.5%로 하락했고,일본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1분기 마이너스 0.9%를 기록한 뒤 2분기에는 0.4%로 상승세를 보였으나 7월에는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도 지난달 근원물가상승률이 1.9%로 5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중국산 저가 공산품의 대량 수출은 교역상대국의 무역적자 누적,낮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업 수익성 악화,저금리 상황 연출로 인한 자산시장 거품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물가안정 목표치 하향 고심 국내에서도 최근 이 같은 중국 효과를 감안,물가안정 목표범위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1일 한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 참석한 학계·경제계 인사들은 "대외개방 확대로 인한 저가 수입품 증가 등의 경제여건 변화를 감안해 물가안정 목표범위를 1∼3%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 같은 지적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지난 8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물가상승률이 낮은 것은 중국산 저가 수입품으로 인한 '위장된 물가안정' 때문"이라며 "물가상승률에만 초점을 맞춰 콜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면 다른 부문에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현재 시행 중인 중기물가안정목표제의 시한이 끝나는 내년 하반기께 향후 3년간(2007∼2009년) 적용할 물가안정 목표범위를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은이 목표범위를 섣불리 낮추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내년 이후 경기가 본격 회복세에 진입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께 물가안정 목표 범위 수정에 대해 검토하겠지만,목표치를 현재보다 낮출지 여부는 면밀한 분석을 통해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