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의료사고가 빈발하면서 의사의 과실책임을 엄격히 묻는 고액 배상 판결이 잇달아 내려지고 있다. 더구나 대법관 시절 "의사가 과실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환자측 손을 들어준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이 오는 26일 취임하는 데다 의료과실 여부를 의사가 입증토록 한 의료피해구제법의 입법도 추진되고 있어 의료기관을 긴장시키고 있다. 길에서 크게 넘어져 목뼈가 부러진 한모씨(35·여)는 지난 1월 초 앰뷸런스를 타고 보호자와 함께 밤 0시35분께 A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목 부위와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한씨에게 응급실 의사는 뇌진탕 가능성만을 의심해 뇌 부위에 대해서만 CT 촬영을 했다. 오전 2시께 환자가 재차 통증을 호소하자 의사는 그제서야 목뼈 부위를 X레이로 촬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진 판독 미숙으로 목뼈 골절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한씨는 병원에 도착한 지 4시간30분이 지난 새벽 5시께서야 목보호대를 착용할 수 있었지만 이미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지난 5월 병원측에 4억2000여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맹장염 환자 김모씨(25)의 사례는 이보다 더 황당하다. 의사 위모씨가 복부 비만인 김씨의 맹장을 찾지 못해 결국 맹장이 아닌 S상결장(대장의 일부)을 절단한 것.김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패혈증 파킨슨씨병 욕창 등이 겹쳐 18회의 추가 수술을 받았다. 서울고법 민사17부는 지난달 25일 의사 위씨에 대해 위자료 5000만원을 포함해 총 1억3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종래 기껏해야 수천만원에 달하던 의료사고 배상금액이 최근 들어선 억대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암환자 4명에게 방사선을 과다하게 쐬게 해 숨지거나 후유증을 일으킨 병원측에 2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나왔다. 희귀난치병 소송이 전문인 서상수 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을 사건의 피해자들이 법정에 호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과 남부지방법원의 의료조정위원으로 있는 이도영 충무병원장은 "의료전담 재판부를 따로 두는 법원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판사들의 의료사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의료소송이 전문인 변호사들의 증가 추세도 고액배상 판결을 낳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의사 출신 법조인 1호인 전현희 변호사를 비롯 김명식 신현호 전병남 신헌준 변호사 등 현재 10여명에 이르며,이들의 승소율은 70~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이기우 의원 등이 의료분쟁 발생시 의사에게 과실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법' 제정안을 10월 중으로 발의할 예정이어서 대형 의료사고를 줄이지 못하는 의료기관들은 존폐의 기로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병일·유승호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