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두 사람이 첫 단독 대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노 대통령이 회담의 형식과 절차, 의제 문제는 박 대표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만큼 회담에서는 한나라당이 관심을 두고 있는 현안을 시작으로 연정 문제 등 국정 문제 전반에 관해 폭넓은 의견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표 또한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 경제문제에 대해 얘기를 해야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대연정 문제도 논의에 포함될 것임을 언명했다. 이에 따라 회담에선 민생경제 현안과 연정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개혁 문제와 여야간 쟁점 법안 처리 등 제반 정치 현안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연정 = 노 대통령이 박 대표에게 회담을 제의하게 된 배경이자 이유인 만큼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우선 지역구도 해소를 통한 정치문화 선진화가 평생의 신념이자 열망이란 점을 밝히고 이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지역구도에 기반한 고질적인 갈등.대립의 정치환경을 혁파하고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 구현을 위해서라면 대통령 권력도 야당에 이양할 수 있다는 연정제안의 근본 취지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왜 연정 제안을 하게 됐는지, 또 그 제안에 어떠한 저의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나라당에 '정치협상'을 정식 제의하면서 연정에 관한 구체적인 복안도 제시할지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대연정 제안에 대한 내용보다 노 대통령 제안 자체의 문제점과 부당성을 집중 부각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대표는 애초부터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며 대연정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해오다 지난달 31일 의원연찬회에서 "안되는 것은 몇 번을 얘기하더라도 안되는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박 대표는 특히 회담에서 경제상황 악화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국정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점을 연정을 받을 수 없는 근본적 이유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정이란 것 자체가 헌법에도 어긋나며 책임정치에도 위배된다는 점도 지적한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헌법논리의 과잉 현상을 지적하면서 "헌법은 큰 틀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명문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운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지론을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핵심측근은 "노 대통령이 대연정과 관련된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발언을 계속하는 만큼 박 대표가 노 대통령에게 대연정 제안을 철회하고 민생문제에 매진해 질 것을 당부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러한 거부감을 의식한 듯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연정은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제의한 것이란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며 "(연정을) 받아달라고 하기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달라는 뜻을 피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정치개혁 = 박 대표가 "연정은 받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만큼 회담에서 거론될 연정 문제는 지역구도 존속의 근거인 선거제도 개편 등 정치개혁 문제로 옮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노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KBS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에서 "연정을 받기 싫으면 이 분열구도 극복을 위한 정치협상이라도 하고, 연정이 위헌이면 선거제도에 대한 협상을 하자는 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요구"라고 '협상의 순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나라당의 당론인 소선거구제 개혁 문제가 논의될 개연성이 짙다. 선거구제의 경우 노 대통령은 현행 선거구를 넓혀 한 선거구당 2~5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를 감안할 때 탄력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커 보인다. 노 대통령이 총선 전 여야에 보낸 정치개혁 관련 서한에서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게 최선의 방안이지만 소선거구제를 고수해야 한다면 최소한 현행 전국단위 비례대표제가 아닌 권역별 비례대표제만은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박 대표는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정치개혁과 관련해 선거구제 등 제도적 개혁보다 정치권이 지역감정을 악용하지 않을 것과 정책정당화를 통해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풍토를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지난 달 1일 기자회견에서 과거 중선거구제 채택 시절의 역사적 경험을 언급, "선거구제를 바꾼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과거 경험에서 입증됐다"면서 "정당이나 정치인, 특히 국가지도자는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대신 총선이 2008년에 있는 만큼 필요할 경우 총선 직전에 정치개혁협의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에선 특히 개헌 문제도 거론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으나 개헌논의는 내년 5월 지방선거 이후에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노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야 지도부 모두 공감대를 이루고 있어 심도 있게 다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 대표가 4년 대통령 중임 및 정.부통령제를 지지하는 예비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이고, 노 대통령이 개헌으로 정치개혁과 연정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기를 원치 않다고 있다는 점도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박 대표는 개헌문제에 대해서는 사안의 폭발성과 경제현실을 감안해 적절한 시기에 협의할 것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민생경제.쟁점 법안 = 당.정이 마련한 '8.31 부동산종합대책'을 비롯해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는 쟁점 법안의 국회 처리 문제도 주요 회담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우선 한나라당과 각론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대책이 국회에서 차질 없이 통과될 수 있도록 박 대표에 초당적인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 민생 관련 법안의 조속 처리를 촉구하는 한편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제정안과 사학법 개정안 등 당정이 이번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정한 주요 개혁입법 과제에 대해서도 협조를 당부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고유가, 부동산 가격 급등, 내수 침체 등으로 인한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지적, 노 대통령에게 민생문제에 국정 우선순위를 두고 전력을 다해줄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우선 박 대표는 서민생활 안정 및 내수진작을 위해 감세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소주세.담배세 인상 반대 등 `세금과의 전쟁'을 벌일 것으로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동산 문제에 있어선 정부 대책에 대체적인 공감의 뜻을 밝히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하되 입법과정에 위헌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법률검토를 거쳐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김병수 기자 jahn@yna.co.kr bingsoo@yna.co.kr